쉰 살의 예의

기사 요약글

꼰대가 아닌 어른으로 사는 법.

기사 내용

꼰대의 사회학
어쩌다 우리는 꼰대가 되는 것일까?

꼰대. 과거에는 ‘학교 선생님’을 비하하는 은어였다면 요즘에는 그 사용 범위가 넓어졌다. 자신의 나이, 경험 등을 근거로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최근에는 20~30대에서도 ‘젊꼰(젊은 꼰대)’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등장했지만, 보통은 40대 이상 50~60대를 가리킨다. 요즘 5060에게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가 바로 ‘꼰대’로 불리는 것이다.

사실 꼰대의 정확한 사전적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말의 어원에도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먼저 번데기를 이르는 경상도 사투리 ‘꼰데기’에서 비롯됐다는 얘기가 있지만, 요즘 사용되는 꼰대의 뜻과 연결 짓기는 어렵다. 설득력 있는 설은 백작이나 영주를 뜻하는 프랑스어 ‘콩테(comte)’에서 왔다는 설이다. 일제강점기에 친일파 인사들이 (일제로부터) 작위를 수여받은 뒤 스스로 꼰대(콩테의 일본식 발음)라고 불렀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높인다는 점에서 지금의 꼰대들의 행태와 맥락이 닿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역시 요즘 들어 갑자기 꼰대라는 말을 많이 쓰는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를 꼰대로 치부하고 그들과 갈등하게 된 데에는 최근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청년층이 자기 삶을 주체적이고 주도적으로 살아나가기에 어려운 시대가 되면서 이에 대한 책임 공방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기성세대의 경험론은 청년들에게 무책임한 자기변명으로 치부된다. 존경과 인정을 받는 기성세대와 어른은 사라졌고 급기야 틀딱충(틀니 부딪치는 소리가 딱딱거린다는 의미에 벌레 충 자를 붙인 신조어)이나 노슬아치(늙을 노와 벼슬아치의 합성어. ‘나이 든 게 벼슬인 줄 안다’는 의미) 같은 비하 발언이 등장할 정도로 세대 갈등이 심각해졌다. 하지만 기성세대, 그중에서 50+세대는 노인도 아니고 젊은이도 아니어서 더욱 힘든 상황이 됐다. 더 많은 지식과 기술로 무장한 젊은 세대와 여전히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내세울 것은 경험밖에 없는데 이제 그 경험을 ‘꼰대’라는 이름으로 무시당하니 말이다.

확실히 어른은 어렵고 피곤한 자리다. 누구도 피할 수 없이 맞이하는 시간인데도 우리는 정작 이 어른에 맞는 예의와 자격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다. 어른이 되었다고 마음대로 하고 아는 척하다가 꼰대나 개저씨가 되는 시대가 돼버린 것이다.

 

그렇게 꼰대가 된다
예전엔 맞았고 지금은 틀리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꼰대가 된다.

꼰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급한 것은 내가 평소에 하는 행동과 사고에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괜찮았던 상황이 이제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별이 더 어렵다. 인터넷상에는 다음과 같은 ‘꼰대 체크리스트’라는 것이 존재한다.

check list
  • □ 사람을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하고, 나보다 어리면 반말을 한다.
  • □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을 하지 않고 세상 탓만 하는 것 같다.
  • □‘00이란 00인 거야’ 하는 식의 진리 명제를 자주 구사한다.
  • □ 후배의 장점이나 성과를 보면 반사적으로 그의 단점을 찾는다.
  • □“내가 너만 했을 때”라는 말을 자주 한다.
  • □ 나보다 늦게 출근하는 후배가 거슬린다.
  • □ 고위공직자, 유명 연예인과의 개인적 인연을 자주 이야기한다.
  • □ 후배가 커피를 알아서 대령하지 않거나 회식 때 삼겹살을 굽지 않으면 불쾌하다.
  • □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라고 했는데 나중에 보면 내가 먼저 답을 제시했다.
  • □ 후배, 부하 직원의 옷차림과 인사 예절도 지적할 수 있다.
  • □ 내가 한때 잘나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 □ 연애, 자녀 계획 등의 사생활도 인생 선배로서 답을 제시해줄 수 있다.
  • □ 회식, 야유회에 개인 약속을 이유로 빠지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 □ 내 의견에 반대한 후배는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 □ 나보다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 가운데 자신에게 해당하는 항목이 12~15개라면 상당한 꼰대다. 자숙 기간이 필요하다. 6~11개에 해당하는 사람이면 이미 꼰대에 속한다. 주변 사람 역시 당신을 전부터 경계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3~5개라면 꼰대 예비군에 해당한다. 싹을 자르기만 한다면 꼰대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2개 이하라면 성숙한 어른이라고 할 만하다.

 

최근 한 취업 관련 포털사이트에서 ‘직장 내 꼰대’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무려 90%가 ‘사내에 꼰대가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꼽은 가장 많은 꼰대 유형은 이른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어. 넌 대답만 해)’ 스타일(23%)이다. 이런 상사는 회의 시간에 모두에게 아이디어를 묻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의 생각을 은근히 강요한다. “퇴근하고 뭐 해?”라며 갑자기 회식을 잡는 상사도 여기에 속한다. 다음으로는 무조건 복종하기 원하는 ‘상명하복’ 꼰대(20%)와 뭐든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나서는 ‘전지전능’ 꼰대(16%)가 꼽혔다. 그 밖에 무배려·무매너 스타일(13%), 분노조절 장애 스타일(10%), 다짜고짜 반말하는 스타일(9%) 등이 있었다.

 

꼰대의 결정적 조건, 불통

꼰대 체크리스트와 취업 사이트의 설문조사 결과를 종합할 때, 꼰대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은 바로 ‘소통’이다. 성공 여부나 경제력, 외모나 패션 감각 같은 것들은 꼰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심지어 ‘아재 유머’도 과거처럼 힐난받지 않는다. 그런데 꼰대들은 소통을 막는 대화법을 본능적으로 익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우리 때는 더했다.” 현실이 힘들다는 후배나 자녀들에게 내가 젊었을 때는 훨씬 열악한 환경이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지만 사실 숨은 의미는 여러 가지다. ‘네가 지금 하는 고생은 고생 축에도 끼지 못 한다’ ‘나는 훨씬 더 노력하고 고생해서 지금 여기까지 왔다’ ‘너는 아직 인생을 모르는 어린애다’ 등등. 기성세대로서 일종의 보상심리에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후배 세대를 성인으로 인정하거나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낮춰 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리고 이 말을 통해서 내가 돋보이고 내 권위를 인정받기를 기대한다. 이런 불통이 생겨나는 데에는 시대의 변화를 살피지 못한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타인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부족한 이유가 크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공감 능력의 부족은 관심사와 소재의 빈곤에서 오는 경우도 많다.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소설가 김영하는 “프랑스인들이 독서를 하는 이유는 저녁 식사 시간에 대화하기 위해서라고 한다”고 말했는데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꼰대라는 것이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측면도 분명히 있다. <회사인간, 회사를 떠나다>의 저자 김종률은 우리 아버지들을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젊은이로서의 반성과 함께 아버지 세대가 꼰대가 된 것은 ‘회사 문화’에 원인이 있다며 그들을 두둔한다. 관계를 형성한 생활의 세계이자 삶의 전부였던 회사를 떠나면서 회사 안에서 존재했던 자신의 모습과 소통 방식이 회사 밖에서는 통용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불통할 수밖에 없고 결국 꼰대로 낙인찍히게 됐다는 것이다.

어쩌다 대화하게 되면 그동안 쌓인 경험과 낡은 채널을 ‘지혜나 연륜’으로 착각해서 권위적이 되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후배들은 경청하는 선배를 원한다

실제로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대리사회>라는 책을 펴낸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씨에게 자신이 겪은 ‘아재’와 그가 바라는 ‘어른’에 대해 물었다. 그는 꼰대라는 말 대신 아재를 썼다. 인터뷰는 꼰대로 통일한다.

최근 김민섭 씨가 쓴 글이 화제다. 그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청춘직설] 아재들에게’라는 칼럼이 트위터에서 3200회 이상 리트윗됐다. ‘대리운전 기사를 대하는 50대 남성들의 태도’로 발췌된 그 글은 김민섭 씨가 대리운전을 하며 만난 50대가 놀랄 만큼 비슷한 패턴으로 이야기를 꺼낸다는 내용이다. 글에서 그가 전한 ‘아재’들의 특징은 이렇다.

(1) 나에게 열심히 산다는 칭찬, 혹은 걱정을 가볍게 건네지만→ (2) 곧 자신은 더 열심히 살았다는 자기 서사를 시작한다.→ (3) 그에 더해, 사실 젊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노력’을 하지 않고 있으며→ (4) 세상에 공짜 밥은 없다고→ (5) 그러니까 당신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고는→ (6) 이런 이야기 어디 가서 못 들으니 오히려 내가 당신에게 돈을 받아야겠다는 가벼운 유머·개그를 던지고→ (7) 내가 이런 이야기 해줘서 좋았지 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꼰대를 많이 만났나?

연령대를 50대 이상으로 특정하지 않더라도 사회 일상에서 공기처럼 느끼게 된다. 대학에서도 당연히 겪었고 나보다 다섯 살, 열 살 많은 선배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봤다. 요즘에는 ‘젊꼰’이라고 해서 젊은 꼰대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대리운전을 하면서는 50대에서 많이 겪은 것이 사실이다.

50대 아재들의 특징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나?

먼저, 나에게 칭찬이나 걱정을 가볍게 건네는 것은 ‘난 당신과 대화하고 싶다’는 준비, 아니면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당신 이야기의 지분을 어느 정도 주겠다 정도로 좋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칭찬을 하는 것은 상대를 평가할 수 있는 위치에서나 가능하기에 어느 정도는 상하의 위계 관계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3)번부터 (5)번은 같은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젊은이들이 노력을 안 하고 있고 더 노력해야 해, 이건 이제 해묵은 얘기가 된 ‘노오력(보통의 노력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풍자한 말)’에 대한 얘기다. 50대 이상이 보낸 20대와 지금의 20~30대가 처한 상황은 구조적으로 다른데 노력의 총량만을 고려한 얘기를 한다. 우리는 노력한 세대니 너희에게 훈계할 권리가 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6)번은 아재 개그 정도이고 (7)번은 과거에는 (6)번에서 끝나던 것에서 덧붙은 얘기다. 젊은 사람의 눈치를 보는 제스처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2)번인데 아재들의 얘기는 자기 서사가 주를 이룬다. 내가 어떻게 지금의 자리까지 왔는가, 얼마나 고생했는가 같은 얘기다.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젊은 사람들은 절대 자기 얘길 하지 않는다. “요즘 기아가 야구 잘하지 않냐?”라거나 “<무한도전>이 재밌더라” 같은 얘기를 하는데 50대는 자기 인생을 얘기하고 공감을 얻고 싶어 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대학 시간강사를 그만두고 대리기사로 일하면서 목도한 현실을 풀어낸 책 <대리사회>로 주목받았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은 그분들이 많이 외롭다는 반증일 것이다. 대리운전 기사로 열심히 일하는 자네가 멋있네, 대단하네 하고 칭찬을 시작하지만 자기 얘기로 끝나는 것은 결국 자기 얘기를 하고 싶다는 거니까.

지금의 50~60대가 꼰대가 된 것을,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 세대의 회사 문화의 영향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즉, 구조적인 문제로 꼰대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맞는 지적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의 남성들이 아재화 된 데에는 사회가 그만큼 배경을 제공해왔고 그 안에서 그렇게 됐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우리나라 남성들이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달랐을 것이다. 개인은 제도와 문화 안에서 영향을 받는 존재니까. 다만, 나를 둘러싼 제도와 문화가 무엇인지 읽어 내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한 세대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라는 개인과 우리라는 세대가 어떤 제도의 영향을 받아서 지금의 모습이 됐을까 돌아보고 그것을 찢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인식을 한 결과가 (7)번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존경할 만한 어른을 찾기 쉽지 않다. 선배 세대가 어떠하기를 희망하는가?

책의 추천사를 써주신 홍세화 선생을 만나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지난 연말에 한창 ‘최순실 게이트’로 사회가 소란할 때였는데 인사드리러 찾은 자리에서 우리 일행인 삼십 대 세 사람에게 “앞선 세대로서 대한민국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얘기를 시작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 전까지 ‘왜 젊은 세대는 광장에 나가지 않느냐’와‘왜 젊은 세대는 광장에 나가느냐’ 아니면 ‘나는 더 열심히 싸웠다’와 ‘너희는 싸우면 안 돼’ 하는 두 집단밖에 못 봤고 젊은 세대에 대한 비판만 들어봤지 사과를 먼저 하는 위 세대는 처음 본 것이었다. 그 이후에도 선생은 우리를 대할 때 권위로 강요하는 것이 전혀 없었다. 우리에게 음식을 대접하시면서 세심하게 챙기고 식사 도중이나 설거지까지도 절대 양보하지 않으셨다. “내가 여러분을 초대했으니 대접하는 게 맞다”고 얘기하셨다. 그동안 기성세대에서는 보지 못한 ‘사과와 책임’을 처음 목격했다.

인생의 선배에게 기대하는 덕목은 사과와 책임인가?

대부분은 어떤 사안에 대해 자기 얘기를 하면서 사과를 요구해 받아 내거나 아니면 권위를 이용해서 자신의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떠넘기는 모습을 많이 본다. 그만큼 사과는 쉽지 않다. 그리고 사과와 책임의 전제는 경청에 있다고 본다. 경청은 상대 입장에서 사유하는 것을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을 열라’는 격언이 있는데 후배로서는 선배가 지갑을 여는 것보다도 귀를 열어줬으면 한다. 자기 얘기를 하더라도 먼저 후배의 얘기를 들어준다면 아재나 꼰대, 개저씨 같은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쉰 살이 넘으면 가져야 할 자세
어른다운 어른이 되기 위한 최소 조건.

지난봄에 방영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윤식당>이 있다. 많은 사람이 로망으로 꿈꾸는, 날씨 좋고 풍광 좋은 곳에서 식당을 여는 것을 보여준 점에서 인기를 모았다. 더불어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은 나이 든 어른으로서 존경받을 만한 모습을 보여준 배우 윤여정과 신구였다. 굽은 등을 하고 끝까지 자기 책임을 다하며 부엌에서 불고기를 만들던 윤여정과 나서지 않고 ‘알바’로서의 책무에 충실했던 신구의 모습은 닮고 싶은 어른의 그것이었다. 윤여정은 방송이 끝난 후 한 인터뷰에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방송에서 두 사람은 나이를 내세우지 않았고 ‘선생님’으로 대접받으려 하지도 않았으며 유명 배우로서의 허세도 없었다.

어른의 의무와 공부

일본에서 만화가로 활동하는 야마다 레이지는 <어른의 의무>라는 책에서 세 가지를 지켜보라고 조언한다. 첫째, 불평하지 않는다, 둘째, 잘난 척하지 않는다, 셋째,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한다. 별로 어려울 것 없어 보이는 이 세 가지는 10여 년간 야마다 레이지가 작가, 의사, 작곡가, 안무가 등 ‘성공한 인생’이라고 인정받은 유명인 200여 명을 만나서 ‘인간은 왜 사는가’와 같은 근원적 질문을 던져 얻은 답이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존경할 만한 어른의 공통점을 찾았는데 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의무를 지키는 것이 결코 젊은 세대의 비위를 맞추라는 뜻은 아니며 비굴할 일도 아니라고 얘기한다. 오히려 간단해 보이는 이 세 가지가 나이가 들수록 책임과 부담이 커진다는 점에서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오래 살았다는 것은 그만큼 어떤 일에 도전할 기회가 있었고 설령 실패해도 재기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존경받는 어른의 최소 조건으로 ‘후배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전제하기도 한다.

후배 세대가 ‘멋지다’ 또는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할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어제보다 나은 존재인지 항상 의식해야 세 가지 의무를 지킬 수 있다.

 

책 <홍세화의 공부>에서 홍세화는 공부를 강조한다. 나이가 들면 장래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게 되면서 지난 얘기만을 하게 되는데 그럴수록 정신과 몸의 긴장을 유지하고 이를 위해 변화를 추구해야 하고 그 변화를 이끄는 것이 바로 공부라는 것이다. 대담자인 천정환 교수는 동의의 근거로 독일의 인지학자 우르술라 슈타우딩거의 얘기를 덧붙였다. ‘인간의 지혜는 끝없이 젊은이들이나 새로운 것과 접촉하는 소통력과 개방적 학습 능력을 갖고 있어야 늙어도 지혜가 증대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지혜라는 말의 히브리어 어원은 ‘듣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지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경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듣는 데서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혜 있는 척하는 사람은 상대가 묻기 전에 자기 경험을 늘어놓지만 지혜 있는 사람은 상대가 와서 물을 때 얘기하며 ‘먼저 묻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나이 드는 것에는 양가적인 측면이 있다. 젊음을 유지하고 젊은 감각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는 노화를 잘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사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어른으로서 품위 있는 자세를 갖추는 방법도 잘 나이 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성숙한 인격을 갖추면 되는 것이고 어쩌면 다음에 소개하는 ‘장년의 12도’처럼 구태의연해 보이지만 변함없이 긍정하게 되는 원칙을 실행하는 것이다.
 

장년의 12도
  • 1. 나이 들면 말수는 줄이고 소리는 낮추어야 한다.
  • 2. 나이 들면 행동은 느리게 하되 행실은 신중해야 한다.
  • 3. 나이 들면 탐욕을 금하라. 욕심이 크면 사람이 작아 보인다.
  • 4. 나이 들면 먹는 것이 중요하다 가려서 잘 먹어야 한다.
  • 5. 삶의 규모를 갖추는 것이 풍요로운 삶보다 진실하다.
  • 6. 나이 든 사람도 젊은이에게 예절을 갖추어야 한다. 대접을 받으려 하지 마라.
  • 7. 삶을 즐기는 것은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간결한 삶에 낙이 있다.
  • 8. 나이 듦이 아름다움을 잃는 것이 아니다. 절제하는 삶에 아름다움이 있다.
  • 9. 인생의 결심은 마음가짐에 나타난다. 마음을 비우면 세상이 넓어 보인다.
  • 10. 나이 들면 인내가 필요하다. 참지 못하는 게 망령이다.
  • 11. 연륜이 쌓이면 경험도 많고 터득한 것도 많다. 그러나 배울 것은 더 많다.
  • 12. 손에 잡고 있는 것을 언제 놓아야 할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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