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아내에게 필요한 건?

기사 요약글

내 친구와 아내가 1박 2일로 여행을 떠난다면?

기사 내용


영화 <파리로 가는 길>의 줄거리에 벌써 발끈하지 마시길. 영화에서는 어떠한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지만 현실은 모를 일이다. 지금 내 아내가 위기의 아내일 수도!

지난여름, 더위를 식히고자 영화관을 찾은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오늘의 상영작은 <파리로 가는 길>. 흥미롭게도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은 온통 50대쯤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었다. 남편과 함께 온 사람보다는 친구랑 같이 온 이들이 많았다. 아마 이 영화가 중년 부부, 그중에서도 낭만이라는 감미료가 절실히 필요한 중년 여성에게 어필한다고 소문이 나서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성공한 영화 제작자 마이클(앨릭 볼드윈)의 아내 앤(다이앤 레인)이 남편과 함께 칸에 왔다가 귀가 아파서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남편의 사업 파트너인 자크(아르노 비야르)와 파리로 가게 된다. 자크는 미래에 대한 계획보다는 현재의 행복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전형적인 프랑스 남자. 앤은 그에 이끌려 예정에도 없던 1박 2일의 로맨틱한 여행을 하게 된다. 자크와의 여행은 앤의 상상과 기대를 뛰어넘었다. 끼니마다 아름다운 레스토랑에서 훌륭한 와인을 곁들여 식사를 하고 와인과 역사, 문화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과 삶을 즐기는 태도에 설레기도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제대로 손보지 않은 자크의 차는 여행 도중에 고장 나고, 카드가 정지되어 앤애게 돈을 빌리는 등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재주가 없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파리에 도착했고, 그녀에게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겠다’고 자신과 약속했다는 바람둥이 대사를 날리며 헤어진다.
 


 

영화도 재미있지만 그보다 더 인상 깊은 건 중년 여성과 남성의 다른 반응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중년 여성들의 얼굴은 한바탕 멋진 데이트를 끝내고 나오는 것처럼 상기되어 있었고, 그녀들과 동행한 남편의 얼굴은 불편함으로 불그레했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동안 엘리베이터 안과 복도에서 들려온 부부 대화 중 남편들은 공통적으로 앤이 바람둥이 자크의 유혹에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고, 호텔에서 1박을 하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충분히 이해되는 반응이지만 사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중년 부부로 살아가는 법은 꽤 흥미롭다.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지고, ‘함께’가 일상이 되어 소중함이 사라져버린 중년 부부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기 때문이다.

가장 잘 보여주는 건 무엇보다 부부는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내내 귀가 아프다고 말했는데도 귀담아듣지 않던 남편에 비해 자크는 아픈 걸 눈치채고 진통제를 사다 주는 세심함을 지녔다. 거기다 그녀의 외로움이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고 잘 들어주는 남자라니! 앤이 느끼는 설렘을 중년 여성 관객 역시 100%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중년 여성이 잊고 있던, 그리고 그녀들이 가장 바라는 점이 드러난다. 결혼 이후 느낄 수 없던, 누군가 나를 주목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시선이 바로 그것이다.
호텔을 옮기는 날, 남편 마이클은 무거운 캐리어들을 챙기지도 않고 로비로 먼저 나가버린다. 그 무거운 짐을 끙끙거리며 아내 혼자 옮길 때, 배려받지 못하고 버려진 느낌은 자크의 세심한 배려와 얼마나 대비되었을까? 그런 점에서 자크는 여자 마음을 잘 알 뿐 아니라‘함께’한다는 의미를 아는 남자다. 아내보다 일을 더 앞세우고, 아내의 감정보다 자신의 감정이 우선인 남자가 얼마나 아내를 외롭게 하는지, 심지어 결혼을 후회하게 하는지 남편들은 모른다. 현실 속에서 아내에게 육아며, 청소며, 심지어 자기 부모에 대한 효도까지 무거운 짐을 당연한 듯 맡기고도 미안해하지 않는 남편들이 여전히 많다. 특히 한국 남편들은 결혼 후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을 너무 철석같이 믿는 바람에 아내가 자기 마음과 똑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굳이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않아도 아내는 알고 있을 거라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사랑은 표현이다. 다정한 말 한마디, 따뜻한 손길이나 포옹 한 번이 아내를 위로할 수 있음을 남편들은 알아야 한다.
 

영화에서 마이클은 아내가 선물한 고가의 시계를 일면식도 없는 아가씨에게 준다. 그러고는 잃어버렸다고 둘러대는데 그 무심함에 상처를 받는 사람은 영화 속 앤뿐만이 아니다. 그녀를 통해 수많은 아내가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을 것이다. 여행 도중 확인차 걸려 온 남편의 전화는 그녀를 염려하는 듯했지만 중요한 것은 아내가 챙긴 양말을 찾기 위함이었다. 아내를 ‘존재’가 아닌 자기를 위한 ‘필요’로만 알고 사는 남편들의 모습을 영화에서 보며 아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행히 앤은 무사히(?) 돌아왔다. 여행 중 때때로 설렜더라도, 훌륭한 현실감각을 지닌 아내이자 어머니였기에 자크의 유혹에 넘어가진 않았다. 하지만 여자로서의 앤은 자크와의 짧지만 로맨틱한 여행에서 다정한 위로를 받았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것은 자신이 여전히 매력 있는 여성이라는 확신에서 오는 자존감 향상이다. 여행이 끝난 후 이 부부는 앞으로 어떤 부부로 살아갈까? 그 답은 당연하게 남편 마이클 하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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