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안식, 툴루즈 & 몽펠리에

기사 요약글

모든 일에 꼭 예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기사 내용

그런 것은 이유를 동반하고 필연적으로 결과에 얽매인다. 개연성 사절. 감정의 흐름이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똑같이 흘러가야 할 필요는 없다. 좋아한다고 느낀다면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 그냥 당신이 좋아요 라고.

EDITOR이곤  PHOTOGRAPHER김좌상  SPONSORED BYTURKISH AIRLINES, 프랑스 관광청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남 프랑스에 가고 싶다고. 나는 ‘어째서?’나 ‘왜?’ 같은, 어정쩡한 되물음을 하지 않았다. 남 프랑스에서 유추되고 환기되는 것은 처음부터 많은 것을 담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남쪽이 합쳐진 곳에서 떠올려지는 눈부시게 깊은 햇빛, 그런 공기에서 사락사락 새어나오는 바람 또 그러한 향기. 파란 물감을 뿌려 놓은 하늘 아래에선 기분 좋은 비행을 하듯 제비가 날아다녔고, 하루 종일 뜨거웠던 해는 밤 열시가 넘어서야 서서히 분홍빛으로 물들다 졌다. 멀리서 어렴풋이 보랏빛 라벤더 향기가 났으며 곳곳에 붉은색을 띤 목수국이 풍성했던 남 프랑스의 툴루즈와 몽펠리에. 또 알비와 님 그리고 퐁 뒤 가르와 카르카손. 나는 그곳들이 있기에 조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고 그저 나직이 말했다. 그래, 그곳에서 조용히 걷다보면 나는 당신이 진정 원했던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맞아 바로 그, 파란 안식 말이야.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툴루즈Toulouse

이렇게 반짝거리며 빛나는 남프랑스에서 어울리는 말은 아니지만, 프랑스 여행에 만일 저평가라는 항목이 있다면 툴루즈는 바로 그런 분류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을 것이다. 툴루즈 여행을 마친 후 느끼는 감정.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곳 그리고 서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곳.

카피톨 광장Place du Capitole

툴루즈는 흔히 ‘장미의 도시’라고 불린다. 장미가 많아서가 아니라 툴루즈에서 생산되는 붉은 빛이 도는 점토로 건물을 지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 툴루즈의 건물은 다소 붉은 기운이 감돈다. 해가 뉘엿하게 지는 시간이면 그 장미는 더욱 진해져 발갛게 홍조를 띤다. 도시의 건물들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는 곳. 전체 인구의 25% 정도가 학생이라 어디든 젊고 밝은 에너지 또한 이 장미의 도시를 설명하는데 충분한 이유일 것이다.

어디든 학생들이 넘치고 프랑스 특유의 자유와 활기가 가득한 곳, 카피톨 광장이 그 출발 지점이다. 광장에 들어서 곧바로 툴루즈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서면 광장의 미덕인 왁자함과 분주함이 공간에 가득하고 따뜻해진 돌바닥을 걷다보면 그 땅에서 남프랑스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온다. 그 느낌이 물론, 좋다.

 

생 세르냉 성당Basilique Saint-Sernin de Toulouse

유럽 어디에나 종교적인 건축물들이 있지만 툴루즈가 프랑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가는 주요 순례 도시인 까닭에 유독 고풍스럽고 동시에 아름다운 성당이 많다. Saint-Sernin, Saint Stephen's Cathredal 그리고 Couvent des Jacobins과 Notre Dame de la Dalbade, St-Nicolas Church. 물론 어려운 결정이지만 그 중 한곳을 방문한다고 하면 카피톨 광장의 북쪽에 있는 생 세르냉으로. 순례길로 향하는 성당 중 가장 규모가 큰 성당인 까닭이다. 생 세르냉의 내부는 외부에서 보이는 기하학적인 건축의 모습과 달리 놀랄 만큼 소박한 구성이다. 성당 천장 전체를 덮는 천장화도 없고 장식과 조형물도 과하지 않다. 벽은 아무런 꾸밈없이 오래전부터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듯 담담하며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도 유달리 엷다.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활용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자칫 성당의 외적 영향에 신앙심이 틀어질지도 모른다는 지도자의 엄중한 종교적 방향일까. 그래서인지 세르냉의 엄숙함은 다른 성당들과 무게감 자체가 다르며 온 공간에 경건함이 낮게 드리워져 있다. 외부인은 미사 때 정해진 구역 이외에는 들어갈 수 없고 주변에서만 성당을 바라볼 수 있다. 테레사 수녀가 생전에 다녀갔으며 ‘죽기 전에 봐야할 세계 건축 1001’에 선정된 바 있는 생 세르냉. 순례자의 마음이 어린 곳.

 

가론 강Garonne River

가론 강은 피레네 산맥의 에스파냐령 아란 계곡에서 발원해 보르도를 지나 대서양으로 빠져나가는 거대한 강이다. 프랑스 4대 강 중 하나로 길이 647km를 흘러 남프랑스와 서북 프랑스의 대지를 적신다. 그 가론 강이 처음으로 관통하는 대도시가 툴루즈로, 툴루즈의 모든 것에는 필연적으로 가론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쳤음이다. 그래서 어쩌면 가론은 툴루즈와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강바람이 부는 강가는 툴루즈 사람들의 휴식 공간 그 이상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무수히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 사랑을 전하며, 가론과 삶의 모든 것을 함께 한다. 그저 강가에 서서 가론을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의 삶이 마무리되는 곳.

밤 시간이 되면, 강가는 가론을 즐기려는 아니, 가론과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성지가 된다. 프랑스에서는 원칙적으로 길거리에서 술 마시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지만 이곳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경찰들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는다. 불상사는커녕 거대한 강이 위주가 되는 분위기에서는 모두 안전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위화감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강이 광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툴루즈의 가론 강 주변. 시내 중심으로 각각 다른 모양의 교각이 운치를 더하고 다리 주변으로는 야경이 내려앉는다. 그 야경에 사람들이 포개지면서 그림을 완성한다. 이 그림의 제목이 바로 툴루즈이다.

 

Toulouse‘s Hidden Spot 3

카를로스 가르델Charles Romuald Gardes

‘여인의 향기’ 등으로 유명한 탱고의 황제 카를로스 가르델Charles Romuald Gardes은 툴루즈 태생이다. 어린 시절에 아르헨티나로 이주했고 세계 탱고 역사에 가장 큰 별로 졌다. 카피톨 광장 아케이드 천장화에 그를 묘사한 그림이 있다.

생 텍쥐페리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

전 세계 소설의 베스트셀러인 어린왕자의 소설가 생 텍쥐페리는 소설가가 되기 이전에 비행교관이었다. 툴루즈는 프랑스 내 항공 산업으로 가장 활발한 도시였기에 그가 툴루즈에 머물렀던 것은 당연한 일정. 역시 광장 근처에 그가 머물렀던 숙소 Grand Balcon이 있다.

아세자 저택Hôtel d'Assézat

르네상스 양식의 대저택으로 16세기 툴루즈 출신의 대상인 피에르 아세자Pierre d'Assézat에 의해 지어졌지만 정작 자신은 건물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개인용 저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화려하며 현대의 건축 작품을 보는 것처럼 모던하다.
 

Editor's Choice Restaurant

Au Pois Gourman
미슐렝 원스타로 내놓는 플레이팅마다 거의 작품에 가까운 경지를 선보인다. 앙트레와 메인, 디저트까지 즐거운 경험. 프랑스 남부 지방이 오리가 유명해 오리고기도 훌륭하지만 고소하고 쌉쌀한 푸아그라 메뉴가 1순위 메뉴.
3 Rue Emile Heybrard, 31300 Toulouse
pois-gourmand.fr

 

나의 프랑스식 정원, 카르카손Carcassonne

툴루즈에서 A61 도로를 타고 내려오면 두 곳으로 갈라지는 이정표가 나온다. 몽펠리에와 바르셀로나로의 선택. 그러나 그런 고민은 이곳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카르카손, 2,500년이 넘는 역사적인 성채이자 견고한 요새이며, 궁전이자 하나의 작은 왕국인 곳.

유럽의 요새들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알려지는, 카르카손이라는 하나의 이름만으로 완성되는 남프랑스의 마스터피스. 카르카손은 예전에는 멀리 북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하고 이베리아 반도와 나머지 동쪽의 유럽 지역을 연결하는 통로였다. 중세에는 이곳을 지키는 2중 요새로 거듭 발전해 왔으며 현재에는 파리와 몽생미셸에 이어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찾고 싶어 하는 여행지 3위에 올라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절정의 성채 앞에서 그런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사실은 조금 미뤄도 좋지 않을까. 이 아름다운 왕비의 프랑스적인 기품을 느낄 수 있다면 말이다.

성안을 일컫는 라 시테La Cite로 들어서면 곧바로 중세시대로 안착한다. 그 시대의 돌담과 돌바닥 그리고 그 당시의 모습들이 마치 이 성의 미로처럼 어른거린다. 이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운 좋게도 그 시대로의 초대장을 받은 셈. 성벽을 따라 이어지는 망루와 외벽에 촘촘히 박혀있는 작은 문틀 그리고 뾰쪽한 첨탑의 모습 등 눈에 보이는 모든 장면이 중세시대의 동화처럼 그려진다. 따뜻한 질감의 외벽과 파란 하늘이 맞물린 모습은 이곳이 어째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는가에 대한 당연한 이유.

성채의 입구인 나르보내즈Narbonnaise문에서 반대편의 콩탈 성Château Comtal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성안의 성’, ‘요새 속의 요새’라 불리는 콩탈은 원래 이곳을 점령하고 살았던 켈트족의 거처였지만 이후 로만의 영토로 재편성 된 바 있다. 2중으로 쌓은 성벽에 안쪽으로 다시 성벽을 증축한 것으로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견고한 3중 성. 당시 적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변으로 해자가 있었으나 현재 물은 흐르지 않고 있으며 견고한 아치형 돌다리를 건너야 콩탈성으로 들어설 수 있다. 콩탈성의 맨 위에 오르면 오드Aude강 너머 서북쪽으로 주황빛 카르카손의 전경이 펼쳐진다. 멋지게 숨을 한 번 쉴 수 있는 지점. 카르카손의 완성은 바로 이곳이다.

카르카손의 모습은 낮과 밤을 동시에 양분한다. 어둠 속의 성을 다시 보고 싶어 성을 나온 밤, 파란 하늘이 물러난 후 멀리서 따뜻한 밤의 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는 카르카손. 너무 아름다워서 감히 쳐다보거나 손끝 하나조차 댈 수 없는 그대. God Save The Queen.

 

Editor's Choice Hotel

Hotel de la Cité
성벽 안에 위치한 고풍스런 호텔로 오랜 기간 동안 이곳을 대표해 왔다.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카르카손의 전경과 요새는 적당한 표현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압권이다. 곳곳에 귀족적인 기품과 자신감이 배어있지만 오히려 편한 느낌.
Place Auguste Pierre Pont, 11000 Carcassonne
www.cite-hotels.com/hotel-de-la-cite
 

Editor's Choice Restaurant

Domaine d'Auriac
미슐렝 원스타에 빛나는 곳으로 남프랑스 특유의 초록풍경이 함께 하는 곳. 이곳에서의 식사는 만찬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품격이 넘친다. 중세의 느낌을 유지하고 있는 격조 높은 호텔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2535 Route de Saint-Hilaire, 11000 Carcassonne
www.domaine-d-auriac.com

 

차마 돌아서지 못한 이름, 몽펠리에Montpellier

카르카손에서 나와 몽펠리에로 향한다. 프랑스 남부의 랑그독 루씨옹Languedoc-Roussillon지방의 주도로 좀 더 지중해성 기후와 가까운 곳. 그래서 볕은 유난히 좋았고,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맑고 맛있었다. 그래서 특별히 이곳에서는 저녁이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할 것. 몽펠리에를 전부 다 담고 싶다면.

코메디 광장Place de la Comédie

몽펠리에의 중심인 코메디 광장에 서면 언젠가 파리에서 느꼈던 묘한 기시감이 얼핏 주위를 감싼다. 유독 파리를 닮고 싶어 했다는 몽펠리에. 프랑스 내 리틀 파리가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파리의 낭만, 파리의 무드 그리고 파리의 풍경이 몽펠리에 시내 곳곳에 아련하게 남아있다. 코메디 광장은 1755년에 조성된 광장으로 길게 조성된 형태는 달걀 광장이라는 닉네임을 가져다주었다. 18세기와 19세기 두 번에 걸친 대형 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지만 새롭게 다시 세웠다. 오페라 극장 앞에는 프랑스 어디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회전목마가 서 있고, 삼미신 분수가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삼미신 분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와 그이 부인인 에우뤼노메의 딸들인 아글라이아, 에우프로쉬네, 탈리아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유쾌함과 환희, 아름다움과 눈부신 빛 그리고 풍요와 축제. 아마도 이것이 몽펠리에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의 전부가 아닐는지.

몽펠리에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카페Grand Café Riche를 지나 광장에서 오른쪽으로 나가면 길게 펼쳐진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로 샤를 드골 공원이 이어진다. 나뭇잎은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고 그 사이로 햇살은 투영된다. 분수에서 나오는 물에서도 그 빛이 여울져 보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소음이 아닌 아름다운 화음으로 들리는 순간. 프랑스의 자유 그리고 몽펠리에의 여유가 단순한 길 위에 담긴다. 급할 것 없는 시간. 이러한 남프랑스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파브르는 물론 쿠르베, 모네, 마네와 르느와르 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미술관인 광장 뒤 파브르 미술관Musée Fabre은 월요일이 휴관인 관계로 문을 열지 않아 아쉽다. 하지만 그 덕에 좀 더 몽펠리에를 감상할 수 있으니 오히려 Merci Beaucoup!

 

개선문 그리고 몽펠리에 대성당

리틀 샹젤리제라 불리는 포슈Foch거리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길 끝에 개선문이 보인다. 몽펠리에 법원이 바로 옆에 있다. 루이14세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파리의 개선문을 모델로 한 리틀 개선문. 크기는 파리의 것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충분히 몽펠리에를 상징하며 프랑스관광청에 미리 예약을 하면 개선문 옥상으로 오를 수 있다. 옥상에 오르면 파란 하늘에 프랑스 삼색 국기가 알맞은 속도로 펄럭인다. 바람은 아래보다 좀 더 세게 불고 그 속에 이른 여름의 라벤더와 아카시아 향기가 묻어난다. 대법원 너머 오른쪽으로 몽펠리에 의대가 보이고 정면에 페이루 공원이 크게 펼쳐진다. 1180년 설립된 몽펠리에 의과대학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프랑스 의학이 집대성 된 중심지로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최초로 발표된 졸업식도 이곳에서의 졸업식이었다고 한다.

개선문에서 나와 다시 골목을 거닌다. 코메디 광장 주변의 골목보다 좀 더 한적한 공간. 창틀에는 작은 화분이 하나 놓여있고 현관문을 여닫는 소리는 삐걱이지만 신경질적이지 않다. 단테, 보카치오와 더불어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문학자 중 한명이었던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가 몽펠리에에서 머물던 당시의 집을 들른 후 이번엔 유럽 최고의 해부학 관련 박물관으로 향한다. 현재는 일반인들에게는 개방하지 않고 있을 정도로 생생한 컬렉션을 지니고 있기에 더욱 아쉽지만 14세기 중반에 최초로 세워진 웅장미 넘치는 고딕양식의 몽펠리에 생 피에르 대성당Cathédrale Saint-Pierre de Montpellier이 함께 있어 그런 마음을 충분히 누그러뜨려 준다.

 

페이루 왕실 광장Place royale du Peyrou

글쎄, 이곳을 단순한 광장이나 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만족해야 할까. 몽펠리에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딱히 로맨틱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프랑스의, 그러니까 몽펠리에 식 낭만이 이토록 넘치는 곳을. 낮 시간에 개선문을 지나 잠시 들렸던 페이루 광장을 저녁 시간에 다시 찾았다. 공원을 나올 때까지 뒤를 돌아다보며 남았던 아쉬움이 오래도록 진하게 배었기 때문이다.

늦은 저녁시간이 되어 어스름해지면 남프랑스의 하늘은 유독 분홍빛이나 보랏빛으로 물든다. 보통 이 시간에 보이는 붉은 석양과 오렌지 빛 선셋 무리는 이곳에서 다른 색깔을 낸다. 몽펠리에에 내렸던 따뜻한 온도 때문에 하늘이 스스로 농도를 낮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허공에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제비 신사가 둥그런 원을 그리며 활공하고 어디에서나 풍요로운 몽펠리에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을 충만하게 채운다.

루이 14세 동상 뒤, 해가 지는 쪽에 물의 성Chateau d'eau이 보인다. 그리 크지 않은 크기라 성이라는 표현이 조금 과한 것도 같지만 석양이 넘어가며 드리운 빛깔이 물의 성에 닿고, 성을 무대로 사람들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번지면 지금부터 몽펠리에 야간극장은 시작.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사무치게 다가서는 순간이다. 이곳에서 할 일이란 그저 이 언덕에서 몽펠리에를 온 감각으로 느끼는 것. 바람, 석양, 이때의 향기 그리고 저녁 시간의 쓸쓸함과 동시에 저녁시간의 온화함이 모두 들어있다. 물의 성 뒤, 식수용으로 건축되었다는 생 끌레망 수로교L'aqueduc Saint-Clemant를 넘어 완전히 해가 져서 사위가 어두워져 고요해지면 나지막하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이곳이 좋아.

 

샤또 드 플뢰제르그Château de Flaugergues

몽펠리에는 일 년 내내 5일 정도를 제외하고 날씨가 좋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땅에 300일 동안 내린 축복. 프랑스 와인의 1/3은 이곳 랑그독 루씨옹에서 생산된다. 게다가 남프랑스에 왔으니 와인을 한잔 경험하는 것은 남프랑스 여행의 축복 중 하나. 샤또 드 플뢰제르그는 몽펠리에 와인의 자존심으로 오래전부터 몽펠리에의 와인을 대표해 왔다. 한국에도 진출해 있는 이 와인 생산지는 몽펠리에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있다. 자체 레스토랑을 지나면 널다란 정원을 두고 남프랑스 귀족의 성이 자리하고 있다. 내부에는 오랜 세월 동안 내려오고 있는 가문의 문장을 비롯하여 조상의 초상화 등이 이 샤또의 권위를 설명해 주지만 귀족이 흔하게 지닐 법한 허세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루이 15세와 루이 16세 시절의 웅장한 가구들과 무수한 앤티크 소품들,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콜렉팅 한 도자기 그리고 입체적 이미지를 보는 데 사용되는 'Zograscope'라고 불리는 흥미로운 광학 장치 등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어 마치 하나의 개인 박물관에 들어온 것 같다. 전 세계 포도의 종류를 꼼꼼하게 그림으로 기록해 놓은 포도학 관련 책자도 이 작은 박물관의 하이라이트. 와이너리 투어를 마치고 이곳의 대표인 Henri DE COLBERT 씨를 통해 시음회도 할 수 있으니 몽펠리에 와인을 경험해 보고 싶은 와인 애호가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중요 포인트이다.
www.flaugergues.com
 

Editor's Choice Restaurant

Folia
샤또에서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갖가지 와인을 경험해 볼 수 있으며 음식은 정갈하다. 전 세계에서 온 와인 셀러들의 미팅장소로도 유명하다. 디저트가 특히 맛있는 편. 무드라는 이름의 강아지도 폴리아의 명성에 한 몫.
1744 Avenue Albert Einstein, 34000 Montpellier

 

물이 전하는 신화, 퐁 뒤 가르Pont du Gard

처음엔 몰랐다. 이토록 아름답고 눈이 부신지를. 숲 속에서 가만히 오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위대한 군주여, 이곳에 온 사람들에게 당신의 아름다운 손을 흔들어 자비를 내려주소서. 그래서 당신을 경배하게 하소서.

몽펠리에에서 두 시간 남짓, 님을 지나 북동쪽으로 작은 마을들을 따라가다 보면 퐁 뒤 가르라는 거대한 고대 로마의 수로교水路橋를 만날 수 있다. 석회암으로 건조되었으며 50여 킬로미터 떨어진 님 지역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기독교가 전파되기도 전 시기에 지어졌다. 높이 49m, 길이 275m의 3단 아치로 겹쳐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물의 다리. 우선은 이 다리를 직접 보기 전에 현실적으로 알 수 있는 간단한 설명이다. 퐁 뒤 가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입구에 위치한 전시장에 들릴 필요가 있다. 복합 콤플렉스는 영상을 보여주는 멀티미디어관과 퐁 뒤 가르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 그리고 안내시설 등으로 구성돼있어 이해를 돕는다. 전시장에서 나와 잠시 강을 따라 걷다보면 모습을 드러내는 퐁 뒤 가르. 몽펠리에에서 본 수로는 어쩌면 퐁 뒤 가르를 위한 예고편이자 희생이었는지도 모른다. 희생이라는, 다소 무겁고 종교적인 표현을 쓴 이유는 아무래도 이 퐁 뒤 가르가 지니고 있는 건축학적, 역사적 위대함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퐁 뒤 가르의 모습은 현재 지구상에 남아있는 다른 거대 건축물과 비교해도 전혀 그 아름다움이나 기능적인 면에서 밀리지 않았다. 고대 로마인들이 이 절정의 건축물을 짓는데 단 5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했고, 2천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거의 원형 그대로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다는 설명을 듣는다면 퐁 뒤 가르에 대한 인식은 어느새 신화로 바뀌어 곧바로 믿음이 되며, 아마 수 천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엔 분명히 종교의 대상일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동안 서서 이 고대 로마인들이 만들어 놓은 걸작을 감상할 것. 만일 퐁 뒤 가르에 대한 매뉴얼이 있다면 맨 처음에 나오는 사항일 것이다. 과거 로마시대에는 물이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을 정도로 사회적인 효과가 컸고 그만큼 물이 신의 존재처럼 중요했기에 단순한 물의 이동에 이토록 많은 기술과 시간을 총합시켰을 터. 그렇지 않으면 퐁 뒤 가르는 이해되지 않는다. 야트막한 동산을 따라 3층 높이로 오른 후 수로를 통해 반대편으로 나가면 퐁 뒤 가르 일대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길고 어두우며 낮고 좁은 3층의 수로를 지나가는 것은 마치 피라미드를 탐험하는 것처럼 분명히 신비하고 놀라운 경험이다. 골고루 빼곡하게 자라난 초록의 나무들이 남 프랑스를 배경으로 꾸미고 있고 조용하게 가르동Gardon강이 흘러가는 풍경과 그 사이 완벽한 균형과 대칭으로 서 있는 퐁 뒤 가르의 정경이 눈에 넘치게 담기는 순간. 아름다움을 넘어선, 어떤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마저 느낄 수 있는 곳. 만일 태초에 프랑스의 생명이 태어난 곳이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그 기원은 이곳, 퐁 뒤 가르일 것이다.
www.pontdugard.com/co
 

Editor's Choice Restaurant

les Terrasses
새하얀 식탁보와 하늘거리는 바람 그리고 장엄한 퐁 뒤 가르를 바라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으니 이만한 호사가 없다. 새우구이와 프랑스식 감자요리인 폼므 샤또Pomme Chateau가 곁들여진 메뉴가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로 풍미가 진하다.
La Bégude 400 route du Pont du Gard

 

프랑스속의 로마, 님Nîmes

님은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들이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있는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숨은 보석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한국인의 정서와도 잘 맞는 이름. 그래서 더욱 애틋하고 애착이 가는 님.

아레나 님Arènes de Nîmes

님에 도착해서 거리를 걷다보면 그리고 님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고 오지 못한 사람이라면 어느 지점에서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추고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경이와 찬탄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 로마에만 있었다고 생각한 바로 그 세계인류문화유산인 콜로세움, 본토인 로마의 것보다 보존상태가 훨씬 좋은 것을 넘어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는 님의 아레나이다. 과거 로마제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남프랑스 지역에는 유난히 그 시대의 유적들이 많고 이곳 사람들 또한 자신들의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해 보존과 유지에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육중한 벽들과 돌기둥이 늘어선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입구로 들어가 콜로세움을 직접 경험하는 시간. 경기장 안에서 밖으로 이어지는 유난히 많은 출입구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보다 빠르게 드나들기 위해 고안한 디자인이었다니, 그 당시 이미 시스템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를 갖춘 그들의 아이디어에 역시 또 한 번 경이와 찬탄을 보낸다. 과거에는 물론 이곳에서 검투사들끼리 결투를 벌였다. 패배한 자가 현장에서 왕의 지시에 의해 바로 죽임을 당하는 것은 상업영화가 지닌 왜곡된 정보라는 설명이 곁들여진다. 투우의 종가인 스페인, 특히 바로 옆에 이웃한 카탈루냐 지방이 투우를 법적으로 금지시키고 있는데 반해 아를과 이곳 님에서는 아직도 투우를 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1년에 2차례 정도 열린다고 한다. 곧 있을 밴드 뮤즈MUSE의 공연준비가 한창인, 당시엔 엄청났을 2만석 규모의 님 아레나. 아레나 맨 윗 층으로 올라가면 돌벽 너머 님의 전경이 펼쳐진다. 님의 겨우 시작일 뿐인 곳.

 

메종 카헤Maison Carrée
카헤 시립 현대 미술관Carré d'Art-Musée d'art contemporain

아레나에서 내려와 작은 도시 님의 골목을 따라 걷는다. 사람도 많지 않고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도시가 아니라서 한적한 공간은 오로지 걷는 사람의 몫이다. 될수록 천천히 걸어야 이 작은 도시 님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 듯. 시내 중심인 마르셰 광장Place du March에는 님의 상징인 야자수와 악어 조형물이 있다. 과거 로마가 이집트의 나일 지역을 정복하고 난 후 나일의 대표적인 두 상징을 새긴 지폐를 발행했고, 이후 님의 상징은 악어와 야자수가 되었다. 님의 대표적인 공원인 라 퐁텐느 공원을 향해 걷다 다시 맞닥뜨리게 되는 지점. 메종 카헤라고 불리는 고대 로마의 또 다른 유적. 그 유명한 파리의 마들렌 성당에 영감을 준 건축물로 보존 상태가 너무나 좋아 2천 년 전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아우구스트 황제가 자신의 두 손자들에게 주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이른바‘미’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 생긴다면‘완벽한 보존미’라는 칭호를 받기에 조금도 아깝지 않은 신전. 하얀 대리석을 입고 말갛게 서있는 메종 카헤의 모습은 아레나에서 느꼈던 왕의 기품이 조금 다른 형태로 표현된, 그야말로 어린 왕자의 모습이다. 메종 카헤의 반대편에는 극적으로 대비되는 현대적인 모습의 카헤 시립 현대 미술관이 위치하고 있다. 현대 세계 하이테크 건축의 시초이자 세계 유수의 건축물을 도맡아 진행해 온 건축의 대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초기 작품으로 이 건물 이후로 그의 건축 철학이 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던한 인테리어의 미술관 옥상 카페에 올라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있는 메종 카헤를 보는 시간. 남프랑스 특유의 온화한 햇빛이 메종 카헤의 대리석에 반사되어 내려앉고 님의 현대와 과거는 이 지점에서 동시에 손을 맞잡는다.

 

르 퐁텐느 정원Les Jardins de la Fontaine

님 사람들의 휴식처인 르 퐁텐느 정원은 님의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툴루즈에서 보았던 것처럼 정원 주위로 운하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도시의 틀이 충분히 갖춰지고 난 이후인 18세기 무렵의 것이라고 한다. 다시 한 번 2천 년 전의 아레나와 메종 카헤에 경의를 표하는 시간. 정원은 무척 드넓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 정원으로 루이 15세가 직접 명을 내려 짓게 된 이 정원에는 주목할 만 한 장소가 한 곳 있는데 바로 다이안 신전Temple de Diane이라고 불리는 2세기 즈음의 고대 유적. 많은 학자들이 도서관이나 유곽일 것이라고 발표하는 등 오랜 기간을 연구했지만 정확한 용도를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한 미스터리한 건축물이다.
정원에서 나와 빅토르 위고 대로Victor Hugo Boulevard를 따라 내려오면, 계속되는 유적의 진행에 하나의 작은 쉼표를 만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소설‘별’의 작가인 알퐁스 도데의 생가. 리옹Lyon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알레스Alès를 거쳐 파리에서 대부분의 일생을 보냈지만 도데는 분명 님에서 태어났고 이 따뜻한 님의 별을 기억하며 소설을 써내려갔을 것이다. 늦은 시간이라 내부를 볼 수 없어 아쉽지만 그래도 님을 내 마음 속에 별처럼 새길 수 있었던 시간. 가뜩이나 조용한 남프랑스의 님. 밤이 내리면 부디 도데가 보았던 그 시절의 별을 볼 수 있기를.

TIP 1

청바지의 옷감을 흔히 데님이라 하는데 한때 미국인의 상징으로도 여겨졌던 바로 그 데님의 기원이 님이다. 17세기에 직물 제조로 유명했던 님은 청바지용 원단인 서지 천Serge de Nimes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후 세계로 발전해 나간 것.

TIP 2

의외로 담배를 구성하고 있는 니코틴의 유래도 이곳 님이다. 프랑스인인 장 니코Jean Nicot가 포르투갈에서 이 식물을 가져와 처음 소개함으로써 니코틴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마르셰 광장 옆에는 당시 그의 집이 아직도 남아있다.
 

Editor's Choice Restaurant

Aux Plaisirs des Halles
섬세한 요리와 정갈한 인테리어가 느껴지는 곳으로 유난히 해물요리가 맛있지만 과일을 위주로 한 디저트도 상당한 수준. 한적한 골목 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이 철저한 만큼 고객들에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4 Rue Littré, 30000 Nîmes

 

너무나 로트렉적인, 알비Albi

님에서 차로 다섯 시간 여. 소박하고 풍요로운 남프랑스의 전원 풍경을 따라 세 번 정도 낮은 높이의 산을 넘으면 알비가 보인다. 작고 느리며 낮게 흘러가는 알비. 이곳에 도착해서 처음 내 뱉은 말, 이곳에 와서 다행이다.

로트렉박물관Musée Toulouse-Lautrec

알비를 알기 위해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화가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 Lautrec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로트렉은 알비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두 다리의 골절로 하반신을 못 쓰게 됐고, 평생을 장애를 안고 살다 다소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은 비운의 화가이다. 젊은 시절 창작열이 넘쳐 파리로 향한 로트렉은 그곳에서 고흐와 고갱, 오스카 와일드 등 당대의 예술가들과 교류를 하며 프랑스 화단을 이끌었다. 왜곡되고 쓸쓸한 그의 독특한 화풍도 현대 화단에서 독보적이지만 현재에 사용되어지고 있는 많은 포스터 디자인이 그의 작품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인정받는다. 피카소 또한 로트렉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인물. 장애라는 콤플렉스와 지제 높은 귀족 출신, 터질 것 같았던 창작열과 정신착란, 갖가지 기행 등 다양하고 상반된 정서가 화려한 파리와 만나 짧게 꽃을 피웠던 로트렉. 높은 문턱으로 까다로웠던 물랑루즈와 몽마르트가 받아주었던 알비의 작은 천재. 그가 사망한 이후 그의 어머니는 로트렉의 많은 유작을 알비시에 기증했고 1922년 이 작품들을 바탕으로 1905년까지 대주교의 관저로 사용되었던 베르비 궁Palais de la Berbie에 로트렉 미술관이 세워졌다. 미술관의 위치는 시내 중심, 타른Tarn강과 비유Vieux다리가 굽어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위. 데생과 판화, 유화 등 수많은 작품을 소장해 로트렉의 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로트렉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로트렉의 성지. 조용하고 작은 마을 알비에 더없이 어울리는 당신의 이름, 로트렉.
www.museetoulouselautrec.net

 

알비 대성당 Sainte-Cécile Cathedral

알비 시내로 들어와 로트렉 미술관보다 먼저 시야를 뒤덮는 것은 사실 바로 옆에 위치한 알비 대성당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으며 현세에 남아있는 세계 최고의 벽돌 성당으로 기록되는, 길이 113미터와 폭 35미터 그리고 첨탑의 높이가 78미터에 이르는 거대하고 웅장한 건축물. 무엇보다 수 백 만개의 붉은색 벽돌로 마감된 우아하고 고귀함이 넘치는 이 성당을 짓는데 만 무려 200년이 넘게 걸렸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의 문화유산에 관한 기록적인 책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의 저자 리처드 카벤디쉬는 그 1001곳 중 하나로 당연히 알비 대성당을 추천한 바 있다.

알비를 여행자로써 방문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성당의 입구에 들어선 순간 모두가 일관된 반응을 보인다. 그 소리는 단순한 하나의 음으로 충분히 표현될 수 있다.‘아!!’ 이 감탄사는 저마다의 길이만 다를 뿐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동시에 나올 수밖에 없는 소리이다. 이것을 진정 인간이 만들었는가에 대한 마음속의 의문은 뒤이어 자리 잡는 과정일 뿐. 성당은 르네상스 미술의 영향을 받은 화려한 천장 프레스코화로 가득하며 마치 가우디의 작품에 기원이 되었을 것 같은 갖가지 다양하고 종교적인 조형물과 패턴들로 빼곡하다. 벽면과 천장의 그림을 완성하는 데에만 11년의 기간이 필요했으며 정면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은 알비 대성당의 공식적인 인정으로 세계 최고의 최후의 심판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세계 곳곳에 유수한 성당 건축물이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앞자리에 와야 할 알비 대성당. 조금 시간을 두고 천천히 바라본다면 더욱 더 이 기적과도 같은 건축물에 숙연히 고개가 숙여질 것이다.
 

Editor's Choice Restaurant

L'ALCHIMY
내부의 르네상스 데코가 인상적이며, 알비 최고의 맛집으로 인정받는 곳. 스테프들이 나이스하고 유쾌해 식사시간 내내 즐겁다. 해산물부터 육류까지 다양한 요리가 준비되어 있으며 각각 최고 수준의 맛을 유지한다.
12 Place du Palais, 81000 Al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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