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은 사라져도, 추억은 그 자리에! 기억 속 프로야구팀

기사 요약글

그때 그 시절, 추억의 프로야구팀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기사 내용

프로야구는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800만 관중 시대를 열기도 했습니다. 1982년 처음으로 출범된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 두산베어스가 원년 구단으로 지금까지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반면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안타까운 팀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팀은 사라져도 추억은 함께 하는 법!
 


이제는 추억이 된 그때의 프로야구팀!


[1] 삼미 슈퍼스타즈 ~ 현대유니콘스

삼미 슈퍼스타즈는 총 23명으로 경기도와 인천, 강원도 지역을 연고지로 창단했습니다. 슈퍼스타즈라는 이름에 맞게 마스코트도 지구를 지키는 슈퍼맨과 원더우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에 비해 성적은 굉장히 저조했습니다. 세계 프로야구 어디에도 없는 1할 승률과 특정구단 상대 전패의 기록을 갖고 있고 현재까지도 18연패라는 프로야구 최다 연패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슈퍼스타 감사용이라는 영화로 더 유명해진 삼미의 투수 감사용과 장명부가 이 팀의 상징적인 선수였습니다. 장명부는 골든글러브를 획득하기도 했고 삼미를 처음으로 3위까지 올리는데 1등 공신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1985년 전기리그를 끝으로 삼미 슈퍼스타즈는 해체됩니다.


이후에 청보핀토스, 태평양돌핀스를 거쳐 1995년 현대유니콘스로 이어지게 됩니다. 현대라는 대기업이 인수하면서 막대한 자금을 앞세워 프로야구의 판도를 뒤흔들었습니다. 98년을 시작으로 2000년에 이어 2003년, 2004년까지 한국시리즈를 네 차례나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현대자동차가 경영난을 이유로 지원을 끊게 되기 때문입니다.

 

[2] MBC청룡 ~ LG트윈스

MBC청룡은 지금의 LG트윈스의 전신인 팀입니다. MBC는 1981년 창사 20주념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프로야구 창단을 구상하고 있었고 그 결과 가장 좋은 연고지인 서울을 가져가며 MBC 청룡이 탄생하게 됩니다.
 

당시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백인천을 감독으로 영입했는데, 지금으로써는 생소한 선수 겸 감독으로써 무려 4할타율을 기록합니다. 창단 첫해 개막전의 만루홈런과 역전승은 지금도 회자 될 만큼 명 경기로 꼽히며 프로야구를 살린 첫 경기로도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MBC청룡은 서울을 연고로 사용하며 김재박, 김인식, 이해창, 김건우 등 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보유하고도 팀 성적은 생각보다 부진했습니다. MBC청룡은 공기업 방송사가 소유한 구단인 만큼 변화에 유연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결국 1989년 최악의 성적으로 매각을 결정하게 됩니다. 당시 럭키금성이 인수하여 LG트윈스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3] 쌍방울 레이더스

1990년 창단된 제8의 구단, 쌍방울 레이더스는 전북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야구팀으로 초대 감독은 김인식이었습니다. 항상 꼴찌를 도맡아 하는 탓에 팬들도 보살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는 96년 정규시즌 2위, 97년에는 3위를 기록하면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첫 포스트시즌 당시 선수들과 팬들은 큰 감격의 눈물을 흘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선수들의 노력도 IMF 앞에서 물거품이 되기 시작합니다. 모기업인 쌍방울이 재정난에 빠져 구단을 유지하기 힘들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팀의 주축선수를 팔기 시작했고, 팀의 전력은 다시 바닥을 치게 되고 맙니다. 선수들의 생활도 모텔에서 숙박하고 식비마저 깎이는 등 점점 지쳐가게 되고 결국 창단 10년을 가지 못하고 99년 팀이 해체됩니다.

 

[4] 빙그레 이글스 ~ 한화이글스

대한민국 프로야구 역사상 첫 신생팀인 빙그레 이글스! 1986년에 대전을 연고로 하는 7번째 구단으로 창단되었습니다. 한화그룹 소속으로 현재는 한화 이글스라는 팀명을 쓰고 있지만, 당시에는 한화그룹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화약제조 등과 같은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계열사 중 이미지가 좋은 빙그레의 이름을 빌려 온 것입니다.


빙그레 이글스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리그를 호령하는 강호로 군림하는데, 화끈한 공격야구를 펼쳤으며 당시 홈런왕 장종훈과 투수 정민철의 인기가 굉장했습니다. 화끈한 타선 덕에 한화의 화약을 본 따‘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락새와 함께 결국 1993년 몰락하게 됩니다. 때마침 한화그룹의 상속 분쟁으로 인해 빙그레는 야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게 되었고, 한화 이글스로 구단명이 변경되어 새 출발을 하게 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5] 해태 타이거즈 ~ 기아 타이거즈

1983년부터 1997년까지만도 무려 9번의 우승을 이뤄낸 무적의 팀. 한국시리즈 100% 우승 확률을 자랑하며 한국프로야구의 왕조라는 타이틀을 얻은 최초의 구단. 눈부신 업적을 자랑하는 해태 타이거즈는 광주광역시를 연고지로 탄생하였습니다.
 

해태 타이거즈는 고작 16명의 선수로 매우 작고 초라하게 시작했습니다. 창단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당시 호남 지역이 광주항쟁의 상처가 남아있었고, 경제적으로 소외되었기 때문에 큰 기업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83년 김응룡 감독이 부임하며 곧바로 우승을 차지했고, 곧 1986년부터 무려 4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우승하며 왕조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선동열, 조계현, 임창용 등 무시무시한 투수들로 인해 투수왕국으로도 불렸으며 이종범이라는 불세출의 타자가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붉은색으로 상징되는 유니폼은 당시 상대팀들에게는 공포를 심어주기까지 했었지요. 하지만 1997년 IMF로 인해 재정난을 겪게 되었고, 이종범이 일본에 진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2000년 최악의 기록으로 시즌을 마친 뒤, 2001년 IMF의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해태가 기아에 팀을 매각하면서 현재의 KIA 타이거즈가 되었고, 지금까지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프로야구는 출범과 동시에 큰 인기를 끌었던 만큼, 우리에게 참 많은 추억을 안겨주었습니다. 처음 6개의 구단으로 시작된 프로야구는 이제 10개의 구단이 되어 사람들에게 더 큰 사랑을 받는 중입니다. 명실상부한 국민스포츠로 자리매김하고 있지요.


오늘은 추억의 프로야구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팀도 있지만, 팀은 사라져도 그 추억과 애정만은 아직 우리와 함께 하는 것 같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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