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식이가 아닌, 허리에 앞치마 두른 요섹남과 살고 싶다

기사 요약글

삼식 씨의 빵 셔틀 항변

기사 내용

다음은 재래시장으로 산책을 나간다는 우리 집 삼식 씨에게 지폐 한 장을 쥐어주며 나눈 대화다.

“포항초 한 단하고 숙주 한 봉 사 오슈. 남는 돈은 팁이오. 아, 그 시장의 미나리 좋더라. 그것도 보이면 한 봉지 부탁하오.”
“이걸로 그걸 다 사라고? 당신, 빵 셔틀 시키는 일진이오?”
“세 끼 챙겨주는 일진 봤소? 끼니 독립 못 하는 삼식 씨들은 영원한 꼬붕이지~.”

페이스북에 이 글을 포스팅했더니 많이 달린 댓글이, ‘삼식이가 되면 이런 대접이냐’며 불쌍하다는 거였다. 남편을 구박하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는, 그 농담 같은 진담에 귀 기울일 이 몸은 아니다. 지금까지 남편에게 해다 바친 밥상이 대충 헤아려도 1만여 끼가 넘는다. 세상에! 누군가가 자신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1만 끼가 넘는 식사를 준비했다니, 나 같으면 아마 엎드려 절하는 자세로 그 밥상을 받을 것 같다.

이제 와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 분담이 어째야 한다느니, 세상이 달라졌다느니 그런 논쟁을 하자는 게 아니다. 남녀가 부부라는 인연으로 만나 어떤 세월을 살았건 예순을 넘겨 밥벌이의 전쟁을 끝내고 여유 있는 생활로 들어섰다면 자신의 끼니 정도는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아내도 맞벌이를 했건 전업주부를 했건 나름의 역할을 했을 테니 말이다. 아내들에게 물으면 은퇴 후의 남편에게 느끼는 가장 큰 스트레스가 밥 세 끼 챙기는 일이라고 한다. 은퇴한 남편을 뜻하는 ‘삼식 씨’라는 속칭이 아내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60대에는 앞치마를 두른 남편이 섹시하다

훌륭한 식탁을 차릴 정도의 능숙한 요리를 남편에게 바라는 아내는 없다. 하루에 한 끼라도 알아서 챙겨 먹고 가끔은 서투른 솜씨로라도 아내를 위해 식탁을 차리고 와인이라도 한잔하자는, 그 정도의 성의와 마음을 보고 싶다. 모든 것은 태도에 있다. 요리법은 인터넷에 널렸다. 적당히 달고 짜서 웬만하면 맛있게 느껴지는 백종원의 간편한 레시피는 요리 초보인 남편이 따라 하기에 가장 좋다. 근처 백화점의 문화 강좌에도 남자들을 위한 초보 요리 강습이 있으니 조금만 부지런하면 요리법을 터득할 길은 많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서 달인의 칼질을 하고 소금을 흩뿌려가며 스테이크를 굽는 멋진 셰프들만 섹시한 게 아니다. 부엌을 어지럽히고 손을 데어가며 요리에 몰두하는 60대의 남편이야말로 섹시한 남자다. 최근 외손주를 본 고향 선배가 “딸 내외랑 손주가 오는 주말이 난 제일 좋아”라고 해서 귀여운 손주 타령인가 했더니 밥 타령이었다.

“얘들이 오면 식탁의 반찬이 달라지거든!”

삼식 씨여, 아이들이 오면 별미를 하고 늘 보는 남편은 찬밥이나 데워준다고 불평 말라. 그대도 어쩌다 손님처럼 식탁에 찾아오면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 아니, 그 색다른 식탁을 그대가 차려볼 생각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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