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토에 물들다, 서산

기사 요약글

불교가 한반도에 전해지는 과정에 있어서 서산의 역할은 실로 지대했다.

기사 내용

서산으로 불교가 들어와 최초에 안전하게 이식되지 못했다면 불교는 아마 이 땅에서 완전하게 뿌리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천년 고찰인 개심사와 부석사가 있고 가족과 어린이를 위한 장소들이 넘쳐나니, 부처님이 오신 달이자 가정과 어린이를 위한 5월, 이처럼 완벽한 선택지가 또 어디 있을까.

EDITOR박건우 PHOTOGRAPHER김좌상
PHOTO BY서산시청

서산은 전체적으로 100~300미터 내외의 낮은 산들로 이루어진 땅이다. 서쪽의 태안과 이웃하고 있지만 위아래로 낙낙한 바다와 맞닿아 있고 완만하게 펼쳐진 평지와 야트막한 구릉지들이 있을 뿐이라서, 예로부터 인심이 넉넉하고 격하지 않은 고장이었다. 한반도는 이러한 땅을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인 금학포란형 길지로 택해, 주로 산세가 좋고 풍광이 절경인 곳에 지어지는 크고 작은 사찰과 암자들이 서산 일대에는 유달리 많다. 서산에는 그래서 대표적인 사찰인 개심사와 부석사 말고도 문수사, 천장사, 일락사 그리고 서광사, 보덕사, 해광사와 죽사, 삼길사 등 저마다의 역사와 의미가 깊은 명승고찰들이 넘쳐난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많은 암자들도 서산이 불가의 땅임을 나타내는 작은 지표들.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고 여유로운 서산이 마침 느긋한 5월과 만났으니 이미 방향은 정해졌을 뿐이다. 반전이지만, 서산의 한자는 서녘 서西가 아닌 상서 서瑞자를 쓴다. 단순히 방향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곳곳에 길조와 경사스러움이 가득 찬 마을, 이곳을 떠날 때 즈음 느껴지는 바로 그 상서로움의 땅, 서산瑞山.

백제의 미소,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백제의 미소라고 불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작품. 불교가 중국에서 태안을 통해 백제로 건너왔음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이자, 그 극치의 아름다움으로 능히 국보 84호가 된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중국에서 뱃길을 따라 내려오면 가장 먼저 닿는 곳이 바로 서산과 태안 일대였기에 백제시대 이 지역은 서해에서 중국의 문물이 넘어와 정착하기에 가장 적합한 땅이었다. 태안에 닿은 중국과 서역의 문물은 서산을 거쳐 공주로 넘겨졌으며 다시 부여에서 전체적으로 백제의 틀을 구성하기에 이른다.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층암절벽에 새겨진 마애삼존불을 보기 위해서는 나무 계단을 따라 다소 비탈진 길을 올라야 하지만 그런 약간의 수고스러움은 바위에 드리워진 불상을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흩어진다. 제작 시기는 6세기 경, 높이 2.8미터의 마애여래삼존상이 세상의 빛을 본 것은 불과 80여 년으로 오래지 않다. 1958년 한 나무꾼에 의해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것. 가운데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과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토록 섬세하고 또 이다지도 섬밀한 모습이라니. 은은하게 풍기는 미소와 그 자애로운 풍모에서 전해지는 부처의 아우라. 일부러 위엄을 부린 작위적인 모습도 아니요, 애써 의도적인 얼굴을 보이려는 일방적인 풍모도 아니다. 이런 세속과 가까운 모습이 바로 한국적인 인간미가 아닐까. 이 미소가 결국 불교가 전하는 말씀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백제의 미소를 넘어선, 한국의 미소. 마땅히 그리고 당연히 국보이다. 오랫동안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그런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라니. 돌아설 때의 알 수 없는 미안함. 그리고 알 수 없는 미안함으로 차마 돌아서지 못한 아쉬움.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곳이다.

TIP.

외부에 있지만 국보이므로 관리를 엄격하게 한다. 관람시간이 따로 지정되어 있다.
09:00~18:00
하절기 7~8월 09:00~21:00

 

함께 들르면 좋은 곳

안견기념관

서산시 지곡면에 위치한 안견기념관은 서산 땅이 넓게 펼쳐지는 북쪽 동산 정상에 있어 남다른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안견은 신라의 솔거, 고려시대 이녕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화가로 서산 출신이다. 대한민국 전 예술의 역사를 관통해 최고의 정점에 있는 몽유도원도를 그렸으며, 현재 3대 화가의 작품 중 남아있는 작품은 안견의 것밖에 없어 국보를 넘어 값을 매길 수 없는 엄청난 희소성을 지닌다. 건물 외관은 웅장하지만 내부의 컬렉션은 단출한 편이고 다수의 모사본과 몽유도원도를 현세에 다시 제작한 병풍 한 점만이 있어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애석하게도 몽유도원도의 진품을 한국에서는 볼 수가 없다. 몽유도원도가 전시되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일본 나라현에 있는 천리대학의 중앙도서관. 아쉬움과 안타까운 감정이 몽유도원도라는 이름 앞에 먼저 머문다.

TIP. 이종린 문학기념비

서산 출신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단편이란 이름을 사용한 국문소설 모란봉을 썼으며 최초의 종합잡지인 개벽開壁과 어린이 최초의 잡지인 새벗을 창간한 대표적인 문인. 그의 기념비가 안견기념관 앞 공원에 있다.

 

달을 보다, 간월암看月庵

어쩌면 간월암은 한국에 있는 수많은 사찰과 암자 중 가장 특이한 모습과 형태를 지니고 있는지 모른다. 서산의 가장 남쪽 부석면, 바다와 가까운 간월도리를 일컫는 작은 섬 간월도, 그리고 그곳 끄트머리에 곱게 꽃술처럼 들어앉아 숨어버린 간월암. 우리나라 땅 모두를 통틀어 섬 안에 사찰이 있는 곳이 어디 이곳뿐이겠냐 마는 간월암은 섬에 암자가 있는 것이 아니고 암자가 있는 곳에 섬이 있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바닷물이 차면 간월암은 육지와 분리되어 말 그대로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그곳은 땅으로 이어져 다시 서산과 합쳐진다. 전설에 의하면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을 보고 홀연히 깨달음을 얻은 후 암자를 짓고 이름을 간월암이라 했으며 섬 이름을 간월도라 칭했다고 전해진다. 임금님께 진상품으로 올렸던 그 유명한 서산의 어리굴젓이 바로 간월암에서 난 것으로, 이 또한 이곳에서 수행하던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보냈다는 전설이 있다. 서산의 땅 끝에까지 조선과 이성계, 무학대사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서산은 분명 예삿 땅은 아닐 터. 이토록 작은 암자에 많은 이야기가 간월암이 담고 있는 크기만큼 숨어 있다.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언제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일까. 그래서인지 유달리 간월암은 전국의 사진 애호가들로부터 최고의 스폿으로 알려져 있다. 눈이 하얗게 소복이 쌓인 설경 그리고 밤의 처연한 달빛에 빛나는 야경. 역시 천수만 너머로 번지는 석양의 모습까지. 때마다 철마다 이토록 많은 아름답고 각별한 장면을 담고 있는 곳은 한반도 내 그다지 흔치 않다. 수시로 얼굴을 바꿔 마치 달처럼 사라졌다 나타났다 또 서늘한 모습을 하고 있다가 어느덧 꽉 찬 모습을 반복하는, ‘달을 보다’라는 뜻의 간월암. 또 그런 달을 바라보는 암자를 품은 간월도. 간월암이라는 이름은 이곳 말고 다른 곳에서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면 무학은 정책가 이전에 시인이었을는지도.

 

함께 들르면 좋은 곳

서산 버드랜드

서산 버드랜드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서산 천수만을 체계적으로 보전관리하고, 체험과 교육중심의 생태 관광 활성화에 주력하고자 조성된 철새 특화 공원이다. 개인 시설이 아닌 서산시청이 직접 관리를 도맡아 많은 부분에서 세세하고 꼼꼼하며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다. 서산 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천수만은 10월부터 3월까지 월평균 기온이 내륙보다 1.2℃ 정도가 높고, 주변에 곡식을 제공하는 논밭이 많아 북부 시베리아나 만주 등지에서 동남아시아에 이르는 철새 이동경로의 중심지로써 최적화 되었다고 평가받는 곳이다. 200여종에 가까운 많은 종류의 철새를 전 세계 어느 곳보다 다양하게 관측할 수 있으며 철새들이 주로 이동하는 기간인 겨울철에는 30여만 마리가 넘는 오리와 기러기 등이 찾아와 천수만을 새들의 천국으로 물들인다. 특히 가창오리는 전 세계의 90% 이상이 이 천수만에서 관찰되며 황새와 노랑부리저어새 등 많은 멸종 위기종 또한 이곳에서 발견되는 녀석들.

부지는 차를 타고 이동해야할 정도로 상당히 넓고 서산 버드랜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는 피라미드 모형의 입체 영상관과 중심 건물인 철새 박물관을 비롯해 둥지 전망대와 천수만의 자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관찰 데크 등 수많은 다양하고 유익한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어 적어도 반나절 이상은 잡아야 한다. 가정의 달이자 어린이 달인 5월, 가족을 위한 맞춤 여행지를 찾는다면, 서산에서도 특히 이곳은 빼놓을 수 없는 1등 방문지이다.
www.seosanbirdland.kr

 

마음을 열고 닦다, 개심사

유독 명찰과 고찰들이 많은 서산 땅에서도 특히 개심사는 제일 앞에 서는 사찰로 여겨진다.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예산 수덕사의 말사이지만 엄연히 충남 전체를 대표하는 4대 사찰 중 하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교수는 개심사를 수 백 개가 넘는 한국의 사찰 중 5대 사찰로 기꺼이 소개하며 자신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절집 중 한 곳으로 애정을 담아 표현한 바 있다. 마음을 열고 가는 절, 개심사. 충청도 벚꽃 나들이의 최대 명소이기도 하지만 전국의 벚꽃이 모두 지고 난 후에 비로소 핀다는 청벚꽃의 자태는 아직이라 못내 아쉽다. 개심사로 오르는 길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거의 평지에 위치한 일주문을 통과해 20여 분 남짓 걷고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의 세심동 계단을 오르면 바로 개심사가 열린다. 651년에 창건을 했으니 무려 1,300년이 훌쩍 넘는 절이다. 경내는 생각 외로 크지 않고 그래서 고즈넉한 절 특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사랑스럽다는 유홍준 교수의 표현이 적절하게 다가온다. 코끼리 상아 뿔을 닮았다는 상왕산象王山에 왔으니 마치 코끼리처럼 느릿느릿하게 천천히 걷다보면 지금 서있는 이곳이 바로 마음이 열리는 곳의 중심이 아닐까, 청벚꽃이 아쉽지만, 가을이 되면 상왕산 개심사로 가라고 하지 않던가. 가을 단풍 또한 이 못지않을 것이지만 봄의 호젓한 산사를 즐겼으니 아쉬울 것 없이 내려올 뿐.

TIP

서산의 걷기 좋은 길인 아라메길과도 연결되며 보원사지2.5km와 마애삼존여래상4.0km 그리고 해미읍성5.5km까지 이어진다.

 

함께 들르면 좋은 곳

서산목장

개심사에 나와 얼마 지나지 않으면 갑자기 널다란 초목지가 나타난다. 삼화목장, 서산 한우목장, 김종필목장 등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리는 서산목장. 등선 너머 또 그 너머로 이어지는 1,117ha의 드넓은 초원은 서산의 넉넉함을 그대로 닮은 곳으로 부드럽고 유려한 곡선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군데군데 솜사탕처럼 콕 박힌 나무 한 그루는 홋카이도에 있는 비에이를 연상시키고 정상까지 올라 초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오름에 오른 것 같아 제주마저 떠오른다. 홋카이도와 제주를 동시에 경험하고 싶다면, 가까운 서산이 두 가지의 바람을 모두 가능케 해 줄 것이다.

용유지龍遊池

용비지龍飛池라고도 불리지만 정확한 명칭은 신창제이고 저수지이다. 용이 유람을 하거나 용이 날아간다는 뜻으로, 어쨌든 충분히 그런 이야기가 뒷받침되는 풍경을 보인다. 서산목장 안에 속해 있으며 날씨와 계절, 시간 등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 있을 경우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빼어난 풍광을 자랑해 전국의 사진작가들에게 필수 출사지이기도 하다. 정식 표지판이 없고 펜스로 둘러쳐져 있지만 출입금지의 푯말 또한 없어 입장이 불가한 것은 아니다. 뒤편으로 개심사와도 연결된다.

 

섬이 날고 복숭아가 피는, 부석사

부석사가 있는 도비산은 두 가지의 뜻을 담고 있다. 섬이 날아간다島飛山는 뜻과 봄철이면 산 전체에 만발하는 복숭아를 빗대 복숭아가 살찐다는 뜻의 도비산桃肥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경북 영주에 무량수전으로 대표되는 동명의 대大고찰이 있고 개심사와 마찬가지로 수덕사의 말사지만 부석사 또한 전국을 대표하는 사찰 중 하나이다. 영주의 부석사와는 이름뿐 아니라 창건 설화와 내력까지 닮아있어 신비감을 더한다. 서산에서 석양을 보기 위한 장소로 간월암과 천수만 등지를 꼽곤 하지만 도비산, 특히 부석사를 뒤로 두고 서해로 떨어지는 낙조는 우리나라 최고의 풍경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부석사를 찾곤 한다. 일주문부터는 다소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야 하지만 무시무시한 사천왕상이 지키고 있는 천왕문이 없고 경내에는 상징적인 대웅전도 없어 일부러 꾸미지 않은 소박한 마음이 전해져 온다. 경내에는 독특한 형태의 누각인 운거루와 안양정, 극락전, 심검당 등의 건물이 있고 마애석불과 일제 강점기 일제가 한국불교를 일본화하려고 했을 때 온몸으로 거부한 만공스님의 수행토굴도 있어 여러모로 고찰의 품격을 잃지 않는 곳이다. 해가 질 때 즈음의 경내는 마치 해가 수면을 넘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기 전처럼 차분하다. 멀리 바다 끝으로 떨어지며 갖가지 색으로 바다를 물들이는 부석사의 일몰. 어지럽다, 라는 표현이 너무나 아름다워 정신이 혼미하다는 뜻으로 이해된다면 부석사의 그것은 역시 그렇다.

부석사를 나오며 미쳐보지 못한 사자문 주련의 글귀가 부석사를 다시 돌아보게끔 만든다.
入此門內莫存知解입차문내막존지해
이 문으로 들어서면 세속의 앎으로 이해하려 하지 말라.

 

함께 들르면 좋은 곳

해미읍성

해미읍성은 전북의 고창읍성, 순천의 낙안읍성과 함께 성의 틀이 보존되어 있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충청도 전군의 지휘를 맡았던 병마절도사의 성으로 바다에서부터 쳐들어오는 적들을 방어했던 서해안 방어의 최전선이었으며 세 곳의 읍성 중 현세에 가장 잘 보존된 성곽으로 인정받는다. 해미읍성이 주목받는 점은 한때 이순신과 정약용이 이곳에 머물렀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순신은 1579년 선조 12년에 10개월 동안 이곳에 머무르면서 이 지역의 군사 책무를 수행했고 정약용은 잠시 유배생활을 이곳에서 했다고 전해진다.

밖에서는 성벽의 높이 때문에 내부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지만 진남문을 통해 성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보다 큰 규모에 적잖이 놀라게 된다. 둘레 길이가 1.8킬로미터, 5미터 높이의 두터운 성벽과 2미터 남짓한 두께는 해미읍성이 입은 건축학적인 겉옷. 내부의 내아나 객사, 청허정과 동헌, 조선시대 민가를 재현해 놓은 가옥 등 잘 정돈된 갖가지 시설들과, 분명히 배치와 구조를 감안해 심어놓았을 많은 나무들과의 조화로움은 너른 잔디마당과 맞물려 어느 대규모 공원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모습을 지닌다.

 

해미순교성지

해미성지는 해미읍성에서 서쪽으로 약 1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한국 천주교의 가장 중요한 순례지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곳으로 국내 가톨릭 성지 중에서도 특히 수 천 명 이상의 가장 많은 순교자를 냈으며 약 100여 년 간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박해가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부지 내 주요 시설로는 700석 규모의 대성당과 200석 규모의 소성당이 있으며 성당 뒤편에 순교자의 무덤을 형상화한 반원형 모양의 작은 기념관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유달리 곳곳에 사찰과 암자가 많은 서산. 그러면서 천주교의 성지가 있는 곳. 천주교와 불교의 공존. 참 착한 곳, 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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