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종의 선한 영향력

기사 요약글

늘 한결 같은 아버지, 남편 그리고 배우 최수종의 선한 영향력

기사 내용

 

“안녕하세요.”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최수종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한눈에 봐도 몸이 불편해 보였다. 몸이 아파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왔다고 한다. ‘저 몸으로 촬영할 수 있을까’ 불안감이 스튜디오 안에 팽배했다. 그러나 기우였다. 촬영이 시작되자 이 베테랑 배우는 컨디션마저 스스로 컨트롤해냈다. 최수종은 요즘 남쪽 남자와 북쪽 여자가 북한식으로 생활하는 채널A의 예능 프로그램 <잘 살아보세>에서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농사를 짓고, 농기계를 모는 등 시청자들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최수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경운기는 물론 이앙기, 트랙터까지 모는 모습이 진짜 농부처럼 보이더군요.
농사일은 이 프로그램에서 처음 해봤어요. 드라마든 영화든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배역과 관련해 필요한 것은 먼저 배워요. 이미 잘하는 것도 다시 배우며 감을 익히고요. 가령 사극을 많이 해 남들보다 말을 잘 타는 편이지만, 촬영 전에 승마 클럽에서 말을 타는 거죠. 그게 습관이 돼서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농기계 다루는 법을 미리 배웠죠. 충남 태안에서는 배 조종 면허도 직접 땄고요. 드라마든 예능이든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이 동료와 스태프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촬영 전 제 역할을 미리 준비하죠. 또 뭐든 배우는 걸 좋아하고요.

나잇살이 안 보여요. 어떻게 관리하나요?
피트니스센터에서 웨이트를 꾸준히 해요. 25년 동안 매주 토요일에 축구를 해온 것도 도움이 됐고요. 연예인 축구단 일레븐 소속인데 이덕화 선배가 고문이고 제가 단장으로 있어요. 무엇보다 자기 관리의 핵심은 절제라고 생각해요. 전 나이가 들면서 안 하는 게 참 많아요. 담배 안 피우고 술도 잘 안 마시고요. 만남도 잘 안 갖고요. 저라고 즐기고 싶지 않겠어요? 하지만 자제하는 거죠.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배우로 활동할 수 있는 이유예요.

신인 배우들이 늘 하는 수상 소감이 ‘시청자들에게 친숙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입니다. 최수종 씨는 친숙한 배우의 대명사인데, 배우로서 어떤 노력을 하나요?
주위에 참 좋은 선배들이 많은데, 제가 좋아하는 이순재 선생님과 이덕화 선배가 늘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배우는 아무리 잘 나간 드라마 한 편을 해도 1~2년 안 나오면 시청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어떤 배역이든 꾸준히 나오면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주름이 생기는 것도 보여주며 시청자들과 호흡하고 나이 들어가야 한다.” 좋은 선배들 덕에 신인 때 내려놓는 법을 빨리 깨달았어요. ‘예전에 내가 청춘스타였는데’ 하면서 그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기보다 세월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했죠.

남의 조언을 잘 흡수하는 편인가요?
제 카카오톡 프로필에 ‘아버지의 마음, 선한 영향력, 축복의 통로, 믿음, 소망, 사랑’ 이렇게 적혀 있어요. 종교적인 의미뿐 아니라 제가 바라는 삶과 우리 사회에 대한 바람 등 여러 의미가 담겨 있지요. 타인을 존중하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고등학생인 아이들에게도 최민서 씨, 최윤서 씨 하면서 존대합니다. 어릴 때부터 계속 써왔죠.
(최수종은 휴대폰을 꺼내 딸이 보내온 문자메시지를 보여줬다. 아버지에게 쓴 장문의 편지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경어체였다. 아빠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담겨 있었다. 그의 답장 역시 경어체였다. ‘저는 최윤서 씨의 존재만으로도 기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도록 하세요. 저는 최윤서 씨가 자랑스럽습니다.’)

가족 간에 존댓말을 쓰면 살갑지 않잖아요.
많은 분들이 “자식들하고 거리감 생기게 어떻게 존댓말을 쓰냐”고 물어요. 결론부터 말하면 오히려 더 살갑습니다. 부모가 자신을 존중하고 한 인격체로 대해준다는 걸 느끼게 돼 가족끼리 소통이 잘돼요. 아이들이 싸우거나 해서 혼낼 때도 존댓말을 합니다. 각자의 이야기를 다 들어준 뒤 지적할 건 지적하고 포옹하면서 마무리하죠.

존댓말 사용이 자녀들에게 어떤 긍정적 영향을 줬는지 궁금한데요.
(그는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아이들 이야기를 하려니 갑자기 눈물이 나네요. 가족끼리 저녁을 먹다가 아이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아빠’라고 말해요. 그 이유를 물었더니 ‘아빠는 자기들의 모든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어떤 판단을 할 때도 자기들에게 맡기고 늘 도전해보라고 이야기해줘서 힘이 된다’는 겁니다. 감동받았어요. 한편으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가 아이들에게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었나? 다시 생각해보게 됐고요.

지난해 말 결혼 23주년을 맞아 인스타그램에 올린 결혼식 사진이 화제였어요. 사진과 함께 아내에게 ‘더 존중하고, 더 존경하며, 더 많이 아끼고 배려하며, 사랑하며’라는 메시지를 전했는데, 최수종 씨는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만의 이벤트를 해요. 거창하지 않아요. 주로 집 안에 있는 물품을 이용합니다. 포스트잇 이벤트를 소개하면 하희라 씨가 오늘 저녁 늦게 들어오는데, 제가 촬영이 있어서 얼굴 못 보고 나가야 할 때가 있죠. 그럴 때 하희라 씨가 집에 들어오는 동선에 따라 포스트잇을 붙여요. 입구에는 ‘당신 수고 많았어요. 지금 당신 목이 마를 테니 냉장고에 가보세요’라고 적고, 냉장고 문에는 ‘물과 이온 음료를 넣어놨어요’라고 적고, 냉장고 안 음료에는 ‘이거 마시고 새벽에 만나요’라고 적어놓죠. 안방 이불 속에는 ‘내가 없어도 잘 자요’ 하고 포스트잇을 붙여놔요. 하희라 씨가 자려고 할 때 읽을 수 있도록요. 이런 식의 소소한 이벤트를 일상처럼 자주 해요.

 

 

청춘스타에서 어느새 50대 배우가 됐습니다. 나이 듦을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50대가 되면서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준비를 시작했어요. 말하자면 천국으로 가는 준비요. 50대는 아직 청춘이라고들 하지만, 몸의 변화로 보면 우리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죽어가고 기억력도 잃어가고 주름도 생기면서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잖아요. 인간에게 죽음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전 50대부터는 죽음을 준비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긍정적인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생각하죠. 그래서 힘주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고 살려고 노력해요.

웰다잉을 준비하는데, 개인적으로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습니까?
제 카카오톡 프로필 글대로죠. 아버지의 마음으로, 선한 영향력을 펼쳐서 내가, 하희라 씨가, 우리 가족이, 우리 축복의 통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최수종 씨의 전성기는 언제입니까?
지금부터죠.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오늘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생각하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면 하루하루가 고맙고 감사해지더라고요.

가장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는 뭔가요?
하희라 씨와 여유롭게 해외여행을 다니고 싶어요. 많은 곳을 다녔지만 개인 여행이 아니라 기부와 관련된 여행이었어요. 관광지도 구경하고, 유명 도시도 걸어보는 온전히 우리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배우로서는 연기 열심히 해서 먼 훗날 후배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으며 공로상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KBS에서 연기대상을 3회 수상하며‘트리플 크라운’ 기록을 갖고 있어요. 배우로서 남은 도전은 무엇인가요?
이순재 선생님께서 연말 연기대상 시상식 날, 제가 세 번째 수상하니까 ‘앞으로 최수종은 제외시켜라’ 하시더라고요.(웃음) 이제 어떤 역할을 하느냐보다 작품에, 후배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고 봐요.

올해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2월 6일부터 KBS 2FM에서 4050세대를 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하는데, 제가 DJ입니다. 4050세대가 라디오를 참 많이 듣더라고요. 그래서 자신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며 어느새 중년이 된 그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해주고 싶어요. 제가 듣기만 해도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음악을 선물로 띄워드릴 거예요. 때론 어떤 말보다 노래 한 곡이 나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잖아요. 드라마도 작품이 결정돼서 조만간 촬영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최수종은 링거 투혼으로 3시간여의 촬영과 인터뷰를 무사히 끝내자,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였다. 이날 함께한 스태프를 찾아가 일일이 감사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함께 셀카를 찍고 촬영 소감을 이야기하는 동안 입가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타인의 눈높이에서 소통할 줄 아는 친절한 사람이다. 스튜디오 문을 나선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집이 아닌 피트니스센터로 향했다. 그리고 촬영 모습이 바로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철저한 자기 관리가 최수종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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