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 어른의 송년회

기사 요약글

요즘 어른들의 송년회

기사 내용

 

12월이 되면 항상 등장하는 말이 있다. 세모(歲暮). 한 해가 저문다는 의미가 담긴 이 말에 옛사람들도 감회가 남달랐나 보다. 중국 고서 <예기의소(禮記義疏)>에는 ‘오는 해와 가는 해가 교차하는 때’인 세모에 사람들이 교차하는 길(行)에 제사를 지냈다는 구절이 나온다(周於歲暮實祀行 蓋行者往來之道 而歲暮亦往來之交 故於此祀之). 길에서 흔하게 스치는 사람들도 달리 보이는 것이 세모이고, 또 달리 생각해야 하는 것이 세모라는 뜻일 것이다. 매일 똑같이 지나는 시간임에도 송년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 역시 눈여겨보지 않던 주변의 풍경, 아끼지 않던 주변 사람, 매일 보면서 데면데면해진 가족을 다시 챙길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어른으로서 한 해를 보내는 방식이다.

 

 

BGM이 있는 송년회


12월 30일. 매년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나에게는 좀 특별한 날로 기억되는 날짜다. 1986년 12월 30일은 나의 첫 무대가 있던 날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행위 음악을 타이틀로 한 무대였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96년 12월 30일. 나는 십 년이라는 고생의 시간을 자축하며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한국에서 실험예술에 대한 내 무모한 도전은 지탄을 받는 때도 있을 만큼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 뒤, 서울을 떠나 2년간 작곡과 공부에 매진한 다음 그 시간을 동력 삼아 지금까지 하우스콘서트를 끌어오고 있으니 연말이면 여전히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매주 월요일마다 여는 이 하우스콘서트와는 별도로 해마다 연말이 되면‘갈라 콘서트’라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하우스콘서트보다 규모를 늘려서 십여 가지 프로그램에 연주자만 삼십 명 정도 출연한다. 그야말로 일 년의 하우스콘서트를 마무리하는 문화 잔치인 셈이다. 음악을 가까이하는 삶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클래식은 더 어렵게 생각하기 쉽다. 그럴수록 송년을 구실로 연주와 공연 무대에 가까이 다가가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_ 박창수(더하우스콘서트 대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마음을 터놓는 모래시계 송년회


얼마 전 아내와 ‘속마음 버스’라는 걸 탔다. 속마음 버스는 소중한 사람과 마주 앉아 속마음을 이야기하라는 버스다. 참가자들은 ‘모래시계 대화법’이라는 규칙을 따라야 한다. 모래시계가 한 번 모래를 다 쏟는 시간은 3분. 그동안 한 사람이 말을 하고 상대는 온전히 듣기만 한다. 순서가 바뀌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뒤바뀐다. 80분 동안 이 과정을 반복한다. 아주 단순하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기는 할까.
나와 아내는 23년을 함께 살았지만 대화를 20분 이상 하지 못하는 문제 부부다. 성격도 많이 다르고, 생각도 참 많이 달라서 어떻게 23년을 살았는지 신기할 정도다. 모래시계를 마주하고 버스에 앉았다. 우리만을 위한 공간, 그리고 특별하게 주어진 시간 덕에 집중력은 최고로 높았다. 그러나 둘 다 80분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대화의 규칙은 지켰지만 다름을 적나라하게 확인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버스에서 내릴 때는 마음이 먹구름이더니 집으로 가기 위해 전철을 타고부터는 부부가 밝아졌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서로의 다름을, 서로의 오해를 날것으로 확인했다는 묘한 안도감이 두 사람에게 동시에 찾아왔던 것이다.
송년회 계절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속마음 송년회는 어떨까? 모래시계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다. 모래시계를 가운데 놓고 한 사람씩 한 해의 마무리 속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이들은 듣고만 있어야 한다. 시간을 정해놓고 이렇게 몇 차례 모래시계가 뒤집히고 또 뒤집힌다면 송년회의 의미가 살아날 것이다. 서로 간에 깊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분명 경험할 것이다.
_ 윤용인(작가, 여행사 노메드 대표)

 

 

 

혼자 보내는 송년회


밥을 차려놓고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기도가 아니라 사진 찍기이다. 그 사진을 여고 동창 카톡방에 올리고 난 다음에 숟가락을 들면 핸드폰에서 톡톡 반응들이 돋아난다. “와, 웰빙이 따로 없네”, “색감이 좋다”, “요구르트에 들어 있는 건 뭐니?”. 올해 초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밥을 혼자 먹게 되면서 대충 때우는 식의 밥상 차리기에서 나의 건강과 먹는 재미를 지키기 위해 시작한 일이 점점 진화되어 이제는 밥 차리기가 모노드라마처럼 되어버렸다. 혼자 걷고, 혼자 찻집에 앉아 있고, 혼자 있다 보면 어느새 나는 나와 함께 있다. 이번 음력 생일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촛불을 켜고 내 생일을 축하했다. 내가 나에게 줄 덕담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모노의 창조 능력에 대한 신심으로 내친 김에 혼자 하는, 아니 나와 함께하는 송년회를 해볼 참이다. 한 해 동안 찍어놓은 핸드폰의 사진들을 훑노라면 내 인생의 굵은 흐름들이 보일 것이고, 순간을 함께했던 존재(사람, 나무, 바다, 하늘)들을 음미하다 보면 인생 나침반의 바늘 끝이 향하는 곳을 깨닫게 될 것이니, 한 해를 추수해 새해의 식량으로 삼자는 송년회의 취지에 모자람 없이 다가가는 새로운 길이 아니겠는가.
_ 오한숙희(여성학자, 작가)

 

 

 

봉사와 함께하는 송년회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해주는 해비타트 운동에는 많은 자원봉사자가 참가한다. 틈나는 대로 해비타트 현장을 찾는 ‘해비타트 마니아’도 많다. 사춘기로 방황하는 아들과 함께 참가해서 아들에게 “너의 고민거리는 너에게 박힐 못에 불과할 거야”라며 격려하는 아버지도 보았다. 실제로 그 아들은 아빠와 함께 대화하고 망치질하면서 자신감을 되찾았다. 2014년에 한 대기업 그룹사의 임직원 10여 명과 함께 베트남 남부 빈촌을 찾아 장애인 손자와 손녀를 돌보는 ‘포우’ 할머니 집을 지어드렸다. 할머니가 감사의 눈물을 흘릴 때 폭염 속에서 집을 지으며 흘린 땀은 고스란히 일생에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보상되었다. 다녀온 뒤 서울, 포항, 광양, 인천 등에 흩어져 근무하면서도 해비타트 자원봉사 활동의 여운을 못 잊어 그해 말 송년회 대신 춘천의 해비타트 현장을 찾아 자원봉사하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뜻깊게 한 해를 마무리하려는 가정이나 직장, 소모임, 동호회에게 해비타트 자원봉사를 권한다. 한겨울에는 동파 등 부실 공사가 우려되어 집을 짓지 않지만 집 고치기는 가능하다.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힘들게 사는 어려운 이웃의 집을 고쳐주며 흘리는 땀은 삶의 보람을 키워줄 것이다.
_ 이용식(전 한국해비타트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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