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부양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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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노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할 때

기사 내용

요즘 '셀프 부양'이란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셀프 부양이란 자신의 노후를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자립이죠. 그간 우리는 노후 준비로 경제적 자립에만 힘을 쏟아왔습니다. 그러나 은퇴 전문가들은 노후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정서적 자립’이라고 말합니다. 100세 시대, 우리의 행복 수명을 결정할 정서적 자립,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누가 노부모를 부양해야 합니까?

‘자식이 날 부양하겠지’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해서는 곤란하다. 어려운 경제 현실과 고령화는 부모 부양의 패러다임까지 바꾸고 있다.

마포에 사는 50대 후반의 김희자 씨는 매주 월, 수, 금 주 3일은 아침 10시에 서대문 친정으로 향한다. 3년 전 어머니와 사별하고 혼자 되신 아버지를 보살피기 위해서다. 김 씨가 바쁜 날은 정부의 보조를 받아 간병인을 부른다. 보험설계사로 일하면서 아버지 병시중까지 해서 몸은 힘들지만, 자식을 위해 고생한 부모를 내 힘으로 모시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여긴다. 그러나 자신은 절대로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만약 나이가 들어 몸을 가누기 힘들 때는 요양원이나 실버타운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다.

김 씨의 모습은 현재 대다수 5060세대의 현실을 대변한다. 부모에게는 전통적인 부양, 자신은 셀프 부양을 택하는, 부양의 패러다임 전환기에 서 있는 그들이다. 대한민국의 현실도 이를 반영한다. 현재 국내 노인 세대의 비율을 보면 노인 단독 세대가 67.5%, 자녀와 동거하는 세대가 28.4%다. 대부분 자식과 따로 산다. 부양에 대한 생각도 크게 달라졌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1998년도에는 노부모를 ‘가족이 부양해야 한다’가 89.9%,‘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가 8.1%였다. 그러나 2014년 조사에서는 ‘가족이 부양해야 한다’가 31.7%,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가 16.6%였다. 부양 책임이‘가족에 있다’는 생각이 무려 58% 줄어든 대신 스스로 해결, 즉 셀프 부양해야 한다는 의견이 2배 이상 늘어났다. 또 서울시 2016 도시정책지표조사에 따르면 ‘노후에 자녀와 함께 살고 싶다’는 응답은 12%, ‘자녀가 노후 생활을 책임질 것이다’는 응답은 3.4%에 불과했다. 지금 50대들은 자녀들과 함께 살고 싶지도, 경제적인 도움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대다수가 셀프 부양하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나마 경제적 자립은 방송과 언론 등에서 계속 이야기를 해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노후의 행복지수를 결정하는 정서적 자립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하는 실정이다.

 

정서적 자립이 노후 행복지수의 척도

정서적 자립이란 노후의 내 인생을 내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독립적인 힘을 말한다. 여기에는 친구 관계, 취미 활동, 생활력, 간병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모든 항목이 포함된다. 한국은퇴연구소 우재룡 소장은 “아무리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자녀만을 바라보고 살아가거나, 결정적으로 간병기나 사망 시점에서 자녀들에게 큰 부담을 주게 되면 노후 생활을 잘했다고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즉, 자녀와 주위에 부담을 주지 않고 당당하게 노후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문제를 넘어서는 정서적 자립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매우 열악하다. 한국의 정서적 자립 실태를 보여주는 결과 중 하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노인 자살률이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보다 소득이 낮거나 비슷한 나라들의 자살률이 낮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이를 ‘한국의 수치’라고 보도했다. 그만큼 정서적 준비가 부족한 것이다. 우 소장은 “정서적 자립은 경제적 문제와 별도로 자신의 개인적인 노력으로 얼마든지 완성해나갈 수 있다”며 “정신적인 건강과 사회적인 건강을 챙기는 것, 간병 활동과 자기 계발, 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신체적으로 불편할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의 삶이 가능해진다”고 조언했다.

 

스스로 자립하려면?

정서적 자립은 각 시기에 맞는 준비가 필요하다. 비교적 건강한 50~70대와 신체 기능이 둔해지거나 병에 시달리는 80대 이후로 나눠, 이 시기를 보낼 구체적 방법을 계획하는 것이다.

은퇴 전후 50~70대 재충전 후 자기 계발, 새로운 인간관계 형성하기

은퇴를 앞두고 정서적 자립을 위해 중요한 준비 활동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50대 중후반부터 서서히 직장에서 물러나면서 인생 2막을 고민할 시점을 ‘하프타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프타임 때 후반전을 위한 휴식을 취하면서 시합에서 승리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는 것처럼 은퇴 생활도 마찬가지다. 일단 주된 직장에서 물러나도 다시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완전히 은퇴한 것은 아니지만, 은퇴 전략을 세워야 한다. 하프타임은 본격적으로 벌어지는 노후 생활을 준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 - 퇴직 후 재충전의 시간을 충분하게 가진다
  • - 자신의 은퇴 생활 스타일을 파악한다
  • - 진지한 여가 활동을 가진다
  • - 인간관계를 새롭게 보완한다
노년기 후반 80세 이후 친숙한 공동체 속에서 간병 대책 마련

80세 이후에는 동년배 친구들이 크게 줄어들고,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생활 반경이 좁아진다. 게다가 암, 치매, 뇌졸중과 같은 무거운 질병으로 간병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서적 자립이 더욱 중요한 시기다.

  • - 친숙한 공동체에서 생활한다
  • - 여가 생활을 지속한다
  • - 간병 대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한다
  • - 내 집에서 나이 들기
  • -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한다

 

세계는 벌써 셀프 부양 중

‘공동체 안에서 나이 들기(engaged as we age)’. 2010년 미국 보스턴대학교 고령화센터에서 발표한 성공적인 노후 생활 모형이다. 정서적 자립은 어떻게 사는 삶일까?

미국 은퇴자 마을 선시티

미국은 2만여 개의 실버타운과 3천여 곳이 넘는 은퇴자 마을이 있다. 그중 유명한 곳이 바로 애리조나에 있는 은퇴자 마을 선시티(sun city)다. 4만여 명이 거주하며 골프장, 병원, 수영장, 영화관, 쇼핑센터, 소방서, 경찰서 등 어지간한 시설은 다 입주해 있다. 또 애리조나주립대에서 거주자들에게 평생교육을 제공한다. 이곳은 분양을 통해 입주가 이뤄지며 가족 중 한 명은 반드시 55세를 넘겨야 한다. 주택은 단독주택부터, 연립형, 콘도미니엄 등 다양한 형태가 있으며 가격은 최저 13만 달러(약 1억5천만원)~최고 70만 달러(약 8억원)이다. 생활비는 관리비 포함 월평균 150~200만원(2인 기준). 미국 현지 물가를 고려하면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24시간 의료 체계가 갖춰져 있고,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이 있어 입주민들은 마을 내에서 친구를 사귀고, 취미 활동을 하고, 간병까지 해결한다. 독립적인 생활공간에 살면서 마을 공동체에서 또래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이다.

 

핀란드 실버 공동체 로푸키리

핀란드 수도 헬싱키 외곽에 58세대가 사는 7층짜리 고령자 전용 아파트다. 이곳은 친구였던 네 할머니가 서로 도와가며 외롭지 않게 살아보자고 아이디어를 내 만든 실버 공동체다. 입주민들이 사생활을 누리면서 공용 공간에서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이곳은 1층과 7층은 부엌, 식당, 서재, 거실, 세탁실, 사우나, 체조실 등 공용 공간을, 2~6층은 독립된 주거 공간을 배치했다. 로푸키리는 자립이 기본이다. 입주자들이 공동생활 규칙을 정해 식사, 청소, 빨래, 건물 관리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일을 협력해서 해결한다 가령 입주자들은 매주 월~금요일 오후 5시 공동 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는데, 입주자들이 조를 나눠 매주 돌아가면서 준비하는 식이다. 또래끼리 활발한 교류, 다양한 취미 활동을 통한 자기 계발 등을 통해 입주민 모두가 만족하는, 로푸키리는 노인복지가 발달된 북유럽에서도 시니어 주거 공동체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일본 부양 공동체 셰어 가나자와

일본 이시카와 현의 가나자와 시에 있는 공동체로, 일본에 새롭게 등장한 은퇴 커뮤니티다. 목조 주택 타운에 노인과 학생, 장애인이 함께 거주한다. 정원, 체육관, 학교 등 기본 커뮤니티 시설이 들어서 있으며, 이곳에서는 자립이 기본이다. 은퇴자의 입주 조건은 55세 이상, 학생들은 저렴한 월세(3만 엔) 대신에 월 30시간의 자원봉사 의무 시간이 부과된다. 무엇보다 고령자도 일과 봉사를 한다. 실제 80세 노인이 편의점 계산대에서 일하고, 70세 노인이 장애인 청소년에게 운동을 가르친다. 즉 이 공동체에서 노인은 누군가에게 부양받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친구이자 동료이다. 아베 총리를 비롯해 일본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이곳에 다녀갈 만큼 일본에서도 주목하는, 공동체를 통한 정서적 부양의 모델이다.

 

한국 돌봄 공동체 노노케어

시청과 구청 등에서 실시하는 노노케어도 공동체 안에서 나이 들기 모델이다. 노노케어란 말 그대로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는 의미다. 독거노인, 조손가정 노인, 거동 불편 노인, 경증치매 노인, 취약 노인 가정을 방문해 안정적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안부 확인, 말벗, 생활 안전 점검 등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할 여력이 있는 노인에게는 일자리를,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는 돌봄 서비스와 함께 또래 노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독일, 일본 등 해외 선진국에서도 농촌을 중심으로 기존 사회복지 안전망과 연계해 노노케어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의 노노케어는 돌보미가 대부분 가족들이지만, 우리나라의 노노케어는 동네 이웃들이다. 즉 우리식 노노케어는 노인 문제를 가족에만 지우지 않고 이웃과 동년배 그리고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일본보다 발전된 시스템이다. 게다가 돌봄이 필요한 이웃의 속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 수혜자에게 실질적 도움이 줄 수 있다. 우재룡 소장은 “노노케어는 박애 정신을 가진 자원봉사를 기반으로 많은 이웃이 공동체를 형성해 살아가는 공동체 모델이다”며 “지금은 정부의 노인 일자리 시범사업으로 노노케어가 다소 활성화되고 있지만, 향후 무료 봉사를 통해 본래 의미를 살린 노노케어가 정착된다면 한국식 노후 공동체 모델이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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