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완생을 꿈꾸는 남자 유인촌

기사 요약글

자신이 좋아하는 일, 그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때 제2의 전성기가 열리지 않을까 싶어요.

기사 내용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유인촌이 말했다. 우리는 평생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할 뿐, 언제나 미완성의 상태라고. 그의 말속에 미생(未生)들의 노력, 좌절, 방황 그리고 그 끝에 무르익은 깨달음과 지혜가 함축돼 있음을 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육십 하고도 다섯이나 된 그의 인생이 꽤 밀도 있게 다가온다. 연기자를 꿈꾸던 까까머리 중학생에서 국민 배우로, 국민 배우에서 문화부 장관으로, 문화부 장관에서 다시 연극배우로.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집중하며 살았다던 유인촌은 완벽하진 않지만, 최소한 완벽을 위한 노력 정도는 기울이며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그 과정에서 겪은 좋고 나쁜 일들이 무대 위에서 승화되고 있는 요즘이다. 어느 날은 완벽하게, 어느 날은 불완전하게 자신을 완성해가는 유인촌을 만났다.

 

11월 10일부터 예술의전당에서 막을 여는 연극 <페리클레스> 연습이 한창이에요. 지난해 공연 후 반응이 워낙 좋아서 앙코르 공연까지 준비하게 됐다고요?
셰익스피어 시대에 가장 흥행했던 작품으로 꼽히기도 하는데, 타이어 왕국의 왕자 페리클레스가 직면하게 되는 사랑, 행복, 고난, 슬픔 등 인생사 모든 감정이 망라된 작품이에요. 결국 모두가 화해하고 소통한다는 해피 엔딩을 맞게 되는데 요즘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메시지가 아닌가 싶어요. 압도적 스케일, 깊이 있는 메시지 등 여러모로 안팎에서 기대가 큰 작품이지만, 그만큼 배우들이 준비를 잘해야겠죠. 앙코르 공연이니만큼 섬세한 보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에 작년보다 완성도 면에서 훨씬 더 뛰어난 무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큰아들 남윤호 씨와 한 무대에 서게 됐죠. 페리클레스의 젊은 시절과 나이 든 시절을 나눠서 연기한다고 들었어요. 아들의 연기를 어떻게 보고 있으세요?
주인공은 전반적으로 극을 끌고 나가야 할 책임을 갖는데 제 입장에서 보자면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렵죠(웃음). 연기자가 원래 그렇거든요. 남들이 볼 땐 저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도 죽을 때까지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죠. 남자 배우의 전성기는 사십부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아들은 아직 갓난아기예요(웃음). 사실 큰애가 저와 같은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 내심 안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금방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요. 어릴 적부터 우리 극장(유인촌은 연극 전용 극장 유시어터를 운영해왔다)을 놀이터 삼아 다녔으니 영향을 받았겠죠. 배우로 성공한다는 게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만큼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죽을 때까지 연기만 하라는 법은 또 없지 않겠어요. 이 일을 기반으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으니 일단은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탐색하도록 두는 거죠.

2012년 예술의전당 이사장을 끝으로 공직 생활을 접었어요. 그 후엔 어떻게 지냈어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았죠(웃음). 부안, 울진, 삼척, 목포 등 전국을 돌며 공연했어요. 특정 지역에 사는 배우들만 뽑아서 작품을 올리기도 했고, 시민회관 같은 데서 <톨스토이> <파우스트> 같은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죠. 지방은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적 혜택을 덜 받는 면이 있잖아요. 그렇다고 좋은 공연 보러 매번 서울까지 오시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지역으로 찾아가는 공연을 한 셈인데 그 어려운 공연을 누가 보겠냐고 걱정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였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찌나 진지하게 연극을 보시는지 나중엔 서울에서도 못 받은 기립 박수를 받았을 정도였다니까요. 지역과 서울의 문화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현직에 있을 때 여러 시도를 했는데 지금은 뭐 다 흐지부지됐죠(웃음).

장관을 하며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있다면요?
난 그 시절에 내 능력껏 최선을 다했지만 지금에 와서 큰 의미를 두고 싶진 않아요. 그래도 굳이 얘기를 하자면 잃은 건 공연을 많이 못해서 경력 단절이 일어났다는 거고, 얻은 건 한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했다는 거죠. 제가 움직인 예산이 조 단위인데 최소한 삼 년 동안 그 어마어마한 나라 살림을 움직였으니 엄청난 경험이 되지 않았겠어요. 어떤 사람들은 괜히 장관을 해서 좋은 이미지를 다 망쳤다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아무것도 못하죠. 정치적 행위를 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잘했든 못했든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뭐가 됐든 과거지사에 대해 후회하는 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어느덧 환갑이 넘었는데 예전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뭘까요?
젊었을 때는 멋있어 보이는 말과 행동에 집중했는데 요즘에는 겉치레는 다 거둬 내고 본질이 뭘까에 대해서만 생각해요. 무대에 설 때도 마찬가지죠. 기교가 많으면 화려해 보이지만 경박해지기 쉽거든요. 단순하지만 진심과 본질이 담기면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압도적인 무게감이 생기더라고요.

 

 

올해로 햄릿을 6회째 연기하셨어요. ‘이 나이에 또 햄릿을 맡아도 되나 싶었다’는 소감을 밝혔죠. 여전히 주인공이라는 점이 한편으론 좋지 않나요?
내가 다시 <햄릿>에 출연한다면 분명 다른 역을 맡겠지 싶었는데 이번 공연은 배우들 평균 나이가 68.2세더라고요. 그나마 젊은 내가 햄릿이 된 거죠. 나이가 들면 꽃 같은 젊은 배우가 돋보일 수 있도록 도와야죠. 나이 먹어서도 주인공 자리만 욕심내면 일찍 죽어요(웃음). 그거야말로 노욕이지. 인생이든 무대든 자기 나이에 맞는 역할과 위치가 주어지게 마련이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사람이 가장 빛나는 거고.

그럼에도 의욕적으로 이뤄보고 싶은 꿈이 있다면요?
내 손으로 직접 예술 타운을 짓고 싶어요. 양로원처럼 은퇴한 예술가들 다 불러 모아서 같이 연극도 하고, 연주도 하며 사는 거죠.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 싶어 포크레인, 지게차 면허까지 따뒀죠. 직접 책 사다가 필기시험 공부를 했는데 유압 장치니 실린더니 얼마나 어려웠다고요. 필기, 실기 두 번씩 떨어지고 겨우 합격했어요. 토목공사 정도는 내가 직접 해볼 생각인데 집사람이 만류해서 주춤하고 있죠

배우에게 건강관리는 필수죠. 평소 어떻게 체력을 유지하세요?
불편하게 살면 되더라고요. 아침에 귀찮더라도 꼭 수영을 하고 웬만한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식으로요. 일주일에 두세 번 아침에 30~40km씩 자전거를 타는데 일정이 없는 날은 하루 종일도 타죠. 차 밀리는 게 싫어서 시내는 스쿠터, 지방엔 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기도 하는데 공연을 앞두고 괜히 다칠 수 있어서 요즘은 자제하고 있어요.

끝으로 인생의 전성기에 대해 정의해본다면요?
체력이나 정신력이 왕성하고 튼튼할 때, 그때를 대부분 전성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 시기가 지나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 힘들고 어렵더라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 그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때 제2의 전성기가 열리지 않을까 싶어요. 제 친구 중 한 명은 뒤늦게 한의학 공부를 시작해 요즘 봉사 활동을 다니고 있어요. 스리랑카로 파견 봉사를 나간다기에 “네 나이에 오지로 봉사를 가는 게 괜찮겠냐”고 말렸는데 주위의 우려와 달리 그 친구는 정말 즐겁고 행복해하더라고요. 그런 게 바로 인생의 전성기를 사는 것이자 살아 있는 삶이 아닐까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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